Ⅰ. 서론
조선 시대 궁궐에서 사용되는 우물은 ‘어정’이라 불리며, 필요에 따라 관련 관청에서 이용하기 쉬운 위치에 계획적으로 설치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그러한 계획적 설치가 오늘날의 경영과학적 관점에서 봤을 때도 합리적인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물은 식수 및 기타 일상생활에 중요한 요소였기에 물의 공급이 원활하게끔 어정이 설치되어 있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조선 시대 궁궐 건축의 기교를 확인하는 길이 될 것이다. 다른 궁궐이 아닌 창덕궁, 창경궁을 선택한 것은 동궐도를 통하여 우물의 위치 파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적용할 방법은 이진정수계획법이며, 이는 ‘우물을 설치할지, 설치하지 않을지’의 의사결정을 1 또는 0으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연구방법은 우선 동궐도를 통해 궁궐 내 어정을 전부 파악하여 번호를 매기고 우물을 사용하는 건물들의 위치 또한 찾을 것이다. 이어서 각각의 건물에서 각각의 우물까지의 거리를 대략 측정하고, 궁녀, 즉 성인 여성의 평균적인 걸음 속도로 해당 건물에서 우물까지 걸리는 시간을 알아볼 것이다. 조건을 만족시키는데 필요한 우물 개수의 최소화가 목적식으로 설정될 것이다. 이때 역사학적 분석을 먼저 수행한 뒤 경영과학적 접근을 시도할 것이지만, 본 보고서에서는 역사학적 분석 과정에 관한 서술은 최소화하기로 한다.
Ⅱ. 본론
동궐도에 그려진 우물을 전부 표시하자 총 25까지 임의로 번호를 붙일 수 있었다. 우물들은 궁궐 전반에 분포하고 있지만 몇몇 구역에 집중적으로 몰려 있는 양상을 보이기도 하였다. 이어서, 물의 사용은 왕실 구성원의 생활 공간, 궁녀의 일터, 각신들의 업무 공간에서 많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가정하여 궁궐 내에서 물의 사용이 잦을 공간을 같은 지도에 표시해 보았다. 궐내각사, 대보단, 만수전 터, 수정전, 대조전, 수라간, 생과방, 소주방, 사알방, 낙선재, 통명 전 터, 양화당, 환경전, 내사복의 14개 건물 또는 건물터가 표시되었다. <그림 1>에서 빨간 원은 우물, 파란 사각형은 건물을 표시한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각각의 우물에서 각각의 건물까지의 거리를 대략적으로 구하였다. 이는 동궐도를 기준으로 하여 우물과 건물의 직선거리를 잰 후, 현대 지도와의 비교를 통해 동궐도의 축척을 계산하여 실제 거리로 환산하는 방식을 사용하였다. 실제로 사람이 걸어가는 경우의 거리가 아닌 직선거리로 한 이유는 동궐도에는 궁궐 나인들이 이용하였을 통로와 문이 자세히 표시되어있지 않아 정확한 경로 파악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제 걸어갔을 경로의 거리 측정은 오히려 부정확한 결괏값을 불러올 수 있기에 어느 정도 현실과의 오차가 있더라도 ‘직선거리’로 통일하는 방안을 선택하였다.
편의상 건물명은 실제 명칭이 아닌 임의로 붙인 번호를 사용하였으며 해당 번호는 그림 2에 표기하였다. 부록의 <표 1>은 가장 가까운 우물과 건물 간 거리를 0.5로 설정했을 때의 상대적 거릿값이다. 모바일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여 직선거리를 확인한 결과 표1에서의 1은 실제로는 약 35m로 계산된다. 이를 반영하여 표에 값을 다시 채워 넣으면 <표 2>와 같다. 그리고 이를 성인 여성의 걸음인 시속 4km(분속 66.7m)를 기준으로 하여 각 거리를 이동하는 시간으로 환산하면 <표 3>과 같다.
이를 이용하여 이진정수계획법 모형을 구성하면 목적식은 필요한 우물 개수의 최소화이다. 우물 건설에 필요한 비용을 알았다면 비용의 최소화로 두어도 좋겠지만, 우물 건설 비용에 대한 자료가 부족하여 우물 건설 개수로 대신하는 것이다. 의사결정변수는 우물의 존재 여부이며, 제약조건은 각 건물마다 우물이 적어도 두 개는 n분 내의 거리에 위치해야 한다는 것이 있다. n은 1, 3, 5를 각각 넣어 계산해보고 필요할 경우 추가적인 계산도 시행할 것이다. n을 하나로 정하여 풀지 않는 이유는, 직선거리임을 고려하여 시간적인 제약조건을 강하게 잡았으나 다소 임의적인 설정이므로 여러 제약조건의 경우를 고려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스프레드시트로 변환하여 계산해본 결과,
① 건물당 편도 5분 이내인 우물이 적어도 2개 이상 있어야 하는 경우, 우물 7, 8의 2개만으로도 조건이 만족되었다. 이 경우 최소 도달시간의 평균은 2.51분이었다.
② 건물당 편도 3분 이내인 우물이 적어도 2개 이상 있어야 하는 경우, 우물 3, 5, 7, 16, 23의 5개가 필요했다. 참고로 이때의 우물까지의 최소 도달시간의 평균은 1.71분이었다.
③ 건물당 편도 1분 이내인 우물이 적어도 2개 이상 있어야 하는 경우는 최적해를 찾을 수 없다고 나온다. 1.5분, 2분의 경우를 시도해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이때 해 찾기 프로그램에서 1분의 제약조건 충족에 그나마 가까운 해를 찾은 결과를 보면 우물 3, 5, 7, 8, 9, 13, 14, 16, 17, 21, 22의 11개가 필요하였고 이때 건물 1, 2는 1분 내 도달 가능한 우물이 각각 0개, 건물 3, 4, 9는 각각 1개로 제약조건에 어긋남을 알 수 있었다.
위의 세 경우가 시사하는 바는 우선 직선거리 기준으로 도달시간이 5분, 3분인 우물이 2개 이상 있어야 한다는 조건은 여유롭게 만족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부정적으로 해석하면 궁궐 건축 당시 경영과학적 접근법에 어긋나게 가장 효율적인 우물 건축을 추구하지 않고 무조건 우물을 많이 만들었다고도 볼 수 있다. 다만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계획적인 건축이 이뤄졌으나 단지 우물을 계획할 당시의 조건들이 직선거리 3분, 5분보다 더 강화된 제약조건 하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직선거리 3분, 5분, 걸어가는 거리로 하면 대략 2배가 걸린다고 가정할 경우 편도 6분, 10분 정도의 긴 거리이므로 충분히 설득력 있는 해석이다. 또는, 우물 제작 비용이 예상과 달리 매우 저렴할 경우 경영과학적 방법론을 이용하여 가장 효율적인 제작을 계산하는 것보다 그러한 계산을 생략하고 우물을 무조건 많이 만드는 것이 오히려 경제적이었을 수도 있다. 다만 이는 우물 건축의 비용을 지나치게 작게 가정하고 있으므로 현실적인 해석은 아니다.
유교 국가인 조선에서 왕실을 상징하는 건축인 궁궐, 왕릉 등은 조선 토목 기술의 진수를 보여주는 장소이므로, 비록 부정적인 해석도 가능하더라도 후자의 긍정적인 해석처럼 계획적인 건축이 이루어졌다고 해석할 여지가 충분한 경우 그 계획성을 인정하는 것이 옳을 테다. 무작정 우물을 많이만 만든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후술할 ③의 해석에서도 드러난다.
그리고 편도 1분 이내인 우물이 2개 이상 있어야 하는 경우는 우물 11개를 세워도 조건 충족이 되지 않는 것은, 앞의 조건들이 일률적으로 적용된 것이 아니라 건물마다 달랐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예컨대 ③에서의 11개의 우물을 건설할 경우, 건물 1, 2, 3, 4, 9는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지만, 만약 3분 내로 도달 가능한 우물로 범위를 넓힌다면 해당 건물들도 11개의 우물 중에 2개 이상씩 조건이 충족된다. 즉, 1, 2, 3, 4, 9를 제외한 건물들은 1분 내 도달 우물이 2개이고, 1, 2, 3, 3, 9의 건물은 3분 내 도달 우물이 2개라는 상황까지는 충족된다. 실제 현실에서는 ‘모든 건물이 1분 내 도달’이라는 일률적인 조건을 적용하기보다는 '되도록 1분 내 도달을 추구하되, 상황에 따라 3분 내 도달도 허용’ 정도의 완화된 조건을 적용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Ⅲ. 결론
본 연구의 의의는 조선 창덕궁, 창경궁의 궁궐 건축의 계획성을 평가해보는 데에 경영과학적 방법론을 적용했다는 점이다. 분석 결과, 우물의 배치는 각 건물에서 직선거리 3분에 위치하는 것은 여유롭게 충족하였고, 건물의 약 2/3는 직선거리 1분 이내에 우물 2개가 있고, 나머지 1/3 또한 적어도 직선거리 3분 이내에 우물 2개가 있는 상황을 충족시켰다. 이를 통해 궁궐 건축이 우물을 무조건 많이 설치했다거나 단순히 필요한 건물마다 몇 개씩 할당하기보다는 건물들과의 거리를 고려하여 나름 효율적인 설치를 시도하였다고 추론할 수 있다. 생활에 필수적인 물의 공급처로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어정, 즉 우물과, 물을 자주 사용했을 건물 사이의 거리를 파악하여 필요한 우물 개수를 탐구하는 활동은 기존에 역사학계에서 진행했던 우물의 역사적 함의에 관한 연구를 뒷받침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한계점도 존재한다. 미처 파악하지 못한 물 사용 건물이 존재할 수 있으며 그 경우 스프레드시트 상에 건물을 추가하여 모형을 구성해야 할 것이다. 또한, 자료가 공식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직접 측정한 것을 사용하여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점이 있다. 같은 맥락으로, 실제 걸어간 경로를 동궐도 상에서 확인하기 어려운 한계로 불가피하게 직선거리를 구하는 방식을 사용했기 때문에 건물과 우물 간 거리가 실제보다 거의 1/2 정도로 짧게 나왔다는 점이 있다. 더욱 정확한 연구를 위해서는 창덕궁과 창경궁의 답사를 비롯한 자세한 탐구를 통해 실제 궁녀들의 우물 사용 경로 데이터 수집이 필요할 것이다.
참고문헌
한국컨텐츠진흥원, ≪동궐도≫
국립문화재연구소, 〈창덕궁 후원에서 조선시대 어정 2기 발굴〉, 2008
안휘준, ≪동궐도 읽기≫, 문화재청 창덕궁관리소, 2005
유재웅, 〈조선 전기 한성의 식수 조달〉, 한국교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20
역사학은 이용만 당한... 경영과학 방법론 응용에 대한 글이지만
본 블로그에선 역사 게시판에 올려봅니다^^
역사학적으로 태클걸고 싶은 내용이 저 스스로도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냥..
경영과학이 중심인 글이니까... 참았습니다..
동궐도에서 건물과 우물 간 거리를 하나하나 자로 재느라 눈이 아팠던 기억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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