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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론

 

조선 시대 궁궐에서 사용되는 우물은 ‘어정’이라 불리며, 필요에 따라 관련 관청에서 이용하기 쉬운 위치에 계획적으로 설치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그러한 계획적 설치가 오늘날의 경영과학적 관점에서 봤을 때도 합리적인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물은 식수 및 기타 일상생활에 중요한 요소였기에 물의 공급이 원활하게끔 어정이 설치되어 있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조선 시대 궁궐 건축의 기교를 확인하는 길이 될 것이다. 다른 궁궐이 아닌 창덕궁, 창경궁을 선택한 것은 동궐도를 통하여 우물의 위치 파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적용할 방법은 이진정수계획법이며, 이는 ‘우물을 설치할지, 설치하지 않을지’의 의사결정을 1 또는 0으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연구방법은 우선 동궐도를 통해 궁궐 내 어정을 전부 파악하여 번호를 매기고 우물을 사용하는 건물들의 위치 또한 찾을 것이다. 이어서 각각의 건물에서 각각의 우물까지의 거리를 대략 측정하고, 궁녀, 즉 성인 여성의 평균적인 걸음 속도로 해당 건물에서 우물까지 걸리는 시간을 알아볼 것이다. 조건을 만족시키는데 필요한 우물 개수의 최소화가 목적식으로 설정될 것이다. 이때 역사학적 분석을 먼저 수행한 뒤 경영과학적 접근을 시도할 것이지만, 본 보고서에서는 역사학적 분석 과정에 관한 서술은 최소화하기로 한다.

 

 

Ⅱ. 본론

 

동궐도에 그려진 우물을 전부 표시하자 총 25까지 임의로 번호를 붙일 수 있었다. 우물들은 궁궐 전반에 분포하고 있지만 몇몇 구역에 집중적으로 몰려 있는 양상을 보이기도 하였다. 이어서, 물의 사용은 왕실 구성원의 생활 공간, 궁녀의 일터, 각신들의 업무 공간에서 많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가정하여 궁궐 내에서 물의 사용이 잦을 공간을 같은 지도에 표시해 보았다. 궐내각사, 대보단, 만수전 터, 수정전, 대조전, 수라간, 생과방, 소주방, 사알방, 낙선재, 통명 전 터, 양화당, 환경전, 내사복의 14개 건물 또는 건물터가 표시되었다. <그림 1>에서 빨간 원은 우물, 파란 사각형은 건물을 표시한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각각의 우물에서 각각의 건물까지의 거리를 대략적으로 구하였다. 이는 동궐도를 기준으로 하여 우물과 건물의 직선거리를 잰 후, 현대 지도와의 비교를 통해 동궐도의 축척을 계산하여 실제 거리로 환산하는 방식을 사용하였다. 실제로 사람이 걸어가는 경우의 거리가 아닌 직선거리로 한 이유는 동궐도에는 궁궐 나인들이 이용하였을 통로와 문이 자세히 표시되어있지 않아 정확한 경로 파악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제 걸어갔을 경로의 거리 측정은 오히려 부정확한 결괏값을 불러올 수 있기에 어느 정도 현실과의 오차가 있더라도 ‘직선거리’로 통일하는 방안을 선택하였다.

 

편의상 건물명은 실제 명칭이 아닌 임의로 붙인 번호를 사용하였으며 해당 번호는 그림 2에 표기하였다. 부록의 <표 1>은 가장 가까운 우물과 건물 간 거리를 0.5로 설정했을 때의 상대적 거릿값이다. 모바일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여 직선거리를 확인한 결과 표1에서의 1은 실제로는 약 35m로 계산된다. 이를 반영하여 표에 값을 다시 채워 넣으면 <표 2>와 같다. 그리고 이를 성인 여성의 걸음인 시속 4km(분속 66.7m)를 기준으로 하여 각 거리를 이동하는 시간으로 환산하면 <표 3>과 같다.

 

<표 1> : 건물과 우물 간 상대적 거리
<표 2> : 건물과 우물 간 실제 거리(m)
<표 3> : 건물과 우물 간 시간 거리(분)

 

이를 이용하여 이진정수계획법 모형을 구성하면 목적식은 필요한 우물 개수의 최소화이다. 우물 건설에 필요한 비용을 알았다면 비용의 최소화로 두어도 좋겠지만, 우물 건설 비용에 대한 자료가 부족하여 우물 건설 개수로 대신하는 것이다. 의사결정변수는 우물의 존재 여부이며, 제약조건은 각 건물마다 우물이 적어도 두 개는 n분 내의 거리에 위치해야 한다는 것이 있다. n은 1, 3, 5를 각각 넣어 계산해보고 필요할 경우 추가적인 계산도 시행할 것이다. n을 하나로 정하여 풀지 않는 이유는, 직선거리임을 고려하여 시간적인 제약조건을 강하게 잡았으나 다소 임의적인 설정이므로 여러 제약조건의 경우를 고려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스프레드시트로 변환하여 계산해본 결과,

① 건물당 편도 5분 이내인 우물이 적어도 2개 이상 있어야 하는 경우, 우물 7, 8의 2개만으로도 조건이 만족되었다. 이 경우 최소 도달시간의 평균은 2.51분이었다.

② 건물당 편도 3분 이내인 우물이 적어도 2개 이상 있어야 하는 경우, 우물 3, 5, 7, 16, 23의 5개가 필요했다. 참고로 이때의 우물까지의 최소 도달시간의 평균은 1.71분이었다.

③ 건물당 편도 1분 이내인 우물이 적어도 2개 이상 있어야 하는 경우는 최적해를 찾을 수 없다고 나온다. 1.5분, 2분의 경우를 시도해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이때 해 찾기 프로그램에서 1분의 제약조건 충족에 그나마 가까운 해를 찾은 결과를 보면 우물 3, 5, 7, 8, 9, 13, 14, 16, 17, 21, 22의 11개가 필요하였고 이때 건물 1, 2는 1분 내 도달 가능한 우물이 각각 0개, 건물 3, 4, 9는 각각 1개로 제약조건에 어긋남을 알 수 있었다.

 

대수모형 및 스프레트시트 계산

위의 세 경우가 시사하는 바는 우선 직선거리 기준으로 도달시간이 5분, 3분인 우물이 2개 이상 있어야 한다는 조건은 여유롭게 만족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부정적으로 해석하면 궁궐 건축 당시 경영과학적 접근법에 어긋나게 가장 효율적인 우물 건축을 추구하지 않고 무조건 우물을 많이 만들었다고도 볼 수 있다. 다만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계획적인 건축이 이뤄졌으나 단지 우물을 계획할 당시의 조건들이 직선거리 3분, 5분보다 더 강화된 제약조건 하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직선거리 3분, 5분, 걸어가는 거리로 하면 대략 2배가 걸린다고 가정할 경우 편도 6분, 10분 정도의 긴 거리이므로 충분히 설득력 있는 해석이다. 또는, 우물 제작 비용이 예상과 달리 매우 저렴할 경우 경영과학적 방법론을 이용하여 가장 효율적인 제작을 계산하는 것보다 그러한 계산을 생략하고 우물을 무조건 많이 만드는 것이 오히려 경제적이었을 수도 있다. 다만 이는 우물 건축의 비용을 지나치게 작게 가정하고 있으므로 현실적인 해석은 아니다.

 

유교 국가인 조선에서 왕실을 상징하는 건축인 궁궐, 왕릉 등은 조선 토목 기술의 진수를 보여주는 장소이므로, 비록 부정적인 해석도 가능하더라도 후자의 긍정적인 해석처럼 계획적인 건축이 이루어졌다고 해석할 여지가 충분한 경우 그 계획성을 인정하는 것이 옳을 테다. 무작정 우물을 많이만 만든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후술할 ③의 해석에서도 드러난다.

 

그리고 편도 1분 이내인 우물이 2개 이상 있어야 하는 경우는 우물 11개를 세워도 조건 충족이 되지 않는 것은, 앞의 조건들이 일률적으로 적용된 것이 아니라 건물마다 달랐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예컨대 ③에서의 11개의 우물을 건설할 경우, 건물 1, 2, 3, 4, 9는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지만, 만약 3분 내로 도달 가능한 우물로 범위를 넓힌다면 해당 건물들도 11개의 우물 중에 2개 이상씩 조건이 충족된다. 즉, 1, 2, 3, 4, 9를 제외한 건물들은 1분 내 도달 우물이 2개이고, 1, 2, 3, 3, 9의 건물은 3분 내 도달 우물이 2개라는 상황까지는 충족된다. 실제 현실에서는 ‘모든 건물이 1분 내 도달’이라는 일률적인 조건을 적용하기보다는 '되도록 1분 내 도달을 추구하되, 상황에 따라 3분 내 도달도 허용’ 정도의 완화된 조건을 적용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Ⅲ. 결론

 

본 연구의 의의는 조선 창덕궁, 창경궁의 궁궐 건축의 계획성을 평가해보는 데에 경영과학적 방법론을 적용했다는 점이다. 분석 결과, 우물의 배치는 각 건물에서 직선거리 3분에 위치하는 것은 여유롭게 충족하였고, 건물의 약 2/3는 직선거리 1분 이내에 우물 2개가 있고, 나머지 1/3 또한 적어도 직선거리 3분 이내에 우물 2개가 있는 상황을 충족시켰다. 이를 통해 궁궐 건축이 우물을 무조건 많이 설치했다거나 단순히 필요한 건물마다 몇 개씩 할당하기보다는 건물들과의 거리를 고려하여 나름 효율적인 설치를 시도하였다고 추론할 수 있다. 생활에 필수적인 물의 공급처로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어정, 즉 우물과, 물을 자주 사용했을 건물 사이의 거리를 파악하여 필요한 우물 개수를 탐구하는 활동은 기존에 역사학계에서 진행했던 우물의 역사적 함의에 관한 연구를 뒷받침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한계점도 존재한다. 미처 파악하지 못한 물 사용 건물이 존재할 수 있으며 그 경우 스프레드시트 상에 건물을 추가하여 모형을 구성해야 할 것이다. 또한, 자료가 공식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직접 측정한 것을 사용하여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점이 있다. 같은 맥락으로, 실제 걸어간 경로를 동궐도 상에서 확인하기 어려운 한계로 불가피하게 직선거리를 구하는 방식을 사용했기 때문에 건물과 우물 간 거리가 실제보다 거의 1/2 정도로 짧게 나왔다는 점이 있다. 더욱 정확한 연구를 위해서는 창덕궁과 창경궁의 답사를 비롯한 자세한 탐구를 통해 실제 궁녀들의 우물 사용 경로 데이터 수집이 필요할 것이다.

 

 


참고문헌

 

한국컨텐츠진흥원, ≪동궐도≫

 

국립문화재연구소, 〈창덕궁 후원에서 조선시대 어정 2기 발굴〉, 2008

안휘준, ≪동궐도 읽기≫, 문화재청 창덕궁관리소, 2005

유재웅, 〈조선 전기 한성의 식수 조달〉, 한국교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20


역사학은 이용만 당한... 경영과학 방법론 응용에 대한 글이지만

본 블로그에선 역사 게시판에 올려봅니다^^ 

역사학적으로 태클걸고 싶은 내용이 저 스스로도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냥..

경영과학이 중심인 글이니까... 참았습니다..

 

동궐도에서 건물과 우물 간 거리를 하나하나 자로 재느라 눈이 아팠던 기억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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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길준의 학술적 배경을 통한 서유견문의 서양문물소개 배경 분석

 

신문과 서유견문의 서양문물 소개에서의 차이는 간행한 사람의 특성과 주변 상황이 반영된 결과물일 것이다. 유길준의 상황 및 목적을 살펴보고자, 먼저 서유견문을 쓸 때 참고한 책을 확인하자면 그는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하생으로 후쿠자와의 책을 다수 이용했다. 후쿠자와의 『서양사정』과 특히 유사한 부분이 많으며, 학문의 권장문명론의 개략등이 그 사례이다. 해당 책들은 일본 문명개화론자로서의 주장을 담고 있는 책이며, 서유견문의 논조와 유사하다. 다만 유길준은 후쿠자와의 책 뿐 아니라 일본과 미국 유학 생활에서 접한 서적들로부터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는 헨리 휘튼의 국제법 저서의 중국어 번역본인 만국공법, 헨리 포셋의 부국책, 가토 히로유키의 입헌정체략, 오웬 데니의 청한론등을 참고하면서 작성하였을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해당 책들은 서유럽 국제법과 근대 경제학 정책을 소개하고 메이지 일본의 서양 사상 수용을 강조하는 내용을 가졌으며, 서양의 법, 경제, 제도 및 정치 사상을 중국과 조선에게 알린다. , 서유견문19편과 20편은 세계여행 안내서인 만국명소도회1~3권 내용에 유길준 본인의 경험을 더하여 영국과 미국에 대해 서술했다는 주장도 존재한다.*18)

 

서유견문을 집필할 때의 유길준은 당대 최신 저술들에 많은 관심을 가졌으며, 서유견문에서 자신이 다른 사람의 여행기를 참고하였다고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그 도서들로부터 획득한 지식을 서유견문 안에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조선이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하였으며, 자신이 참고한 자료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 하나하나 밝히기보다는 그저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서유견문을 통해 정리하고 알리는 데에 의도가 있었다.*19)

 

, 서유견문이 서양문물 소개에 있어서 구체적 국가 자강 방안보다는 개화사상에 대한 인식의 토대를 마련하려는 경향성을 보이는 이유의 한 가지는 유길준이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하생으로서 그의 문명개화론적인 사상을 깊이 받아들였으며, 그 영향 하에서 서양 유학 과정에서도 구체적 정책론보다는 보다 추상적인 제도사상론의 책들을 참고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유길준의 다른 저술들을 서유견문과 비교해봄으로써 그 서술 배경을 파악하는 것 또한 의미있을 것이다.

 

파란쇠망전사』에서 유길준은 백성들의 정치참여는 거역할 수 없는 시대의 대세라고 인식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서유견문의 3我邦의 권리에서는 군주는 일국의 최상위의 지위와 권력을 가진 자로서 그 인민이 군주를 服事하고 그 정부를 承順해야 한다”(98)라고 보면서 그 존재를 국가의 정치체제에서 배제할 수 없는 당연한 존재로 인정했다. 영국식의 입헌군주정을 가장 이상적으로 간주했던 것도 그런 맥락에서이다.*20)

 

유길준이 1883년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경쟁론에서는 생존경쟁, 적자생존이라는 개념을 조선에 처음 도입하였는데, 개화문명이란 용어보다는 文明不開’, ‘未明不開등의 용어를 사용하면서 신체, 생명, 재산권의 보호와 서로 힘쓰는 것을 통해 사회가 진보한다는 의미를 담고자 했다.*21) 이는 서유견문의 4편의 인간 세상의 경쟁과 거의 유사한 내용이다.

 

해당 내용들을 통해 유길준의 개화사상 자체는 타 저술과 서유견문 속 서술이 얽혀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유길준의 사상이 서유견문이라는 백과사전적 개화사상서의 특성과 결합하여, 기본적으로 개화라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 속에서 조선 백성이 받아들여야 할 새로운 사상적 가치들을 강조하며 기초를 다지는 방식으로 개화를 이루려는 의도가 보인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에서 살펴본 서유견문의 시대성은 사실은 저자 유길준의 이러한 특성이, 서유견문의 서양문물 소개라는 결과로 발현되면서 나타났다고 추론할 수 있을 테다.

 

 

. 결론

 

서유견문은 서양문물 소개에 있어서, 현재 조선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지를 풀어낸 글이기는 하지만 이를 직접적인 대안 제시를 통해 이야기하는 시무책은 아니다. 그보다는 내용에서도 서술 방식에서도, 새로운 개념과 이론들을 들여오며 전반적인 개화 사상의 기반 마련 작업을 시행하는 경향이 드러난다. 이는 신문과의 비교를 통해 더욱 두드러지게 확인할 수 있었다.

 

서유견문이 여러 사상적, 제도적, 인식적 기반을 서술할 때 상정하던 사회는 조선의 군주정 현실이 달랐고, 서유견문에는 과거부터 존재하던 조선 사회의 폐단이 반영되어있지 않다는 점이 있었다. 京主人의 구독료 수취 횡포 등이 여기에 속한다. 또 서유견문은 여러 기술을 새로운 것으로서 소개하고 있음에도, 타 주제, 예컨대 문화를 소개할 때에는 이미 해당 기술 발전이 이루어진 국가를 상정하는 듯이 이야기한다. 이는 다시 해석하면 서유견문은 기존 조선 사회에 대한 엄밀한 분석을 통해 이를 해결하는 구체적 정책을 내놓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보다 전체적인 관점에서의 개화를 들여옴으로써 조선인의 인식적 지평을 넓히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지리, 권리, 정부의 주제가 순서와 분량 면에서 중요도가 부여되고 있었으며 14편 후반부의 개화의 등급은 책의 결론 부분으로서 유길준의 개화에 대한 문명개화론적인 관점을 드러낸다. 그리고 한성순보 주보에서 분량상 중요하게 다루어졌던 군사, 산업, 재정 분야는 한 데에 묶이지 않고 부록 등에 분산되어 등장한다는 점, 그리고 분량적으로도 적다는 점에서 유길준의 중요도 파악에서 뒤로 밀려났음을 추론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각각의 주제에 대한 작성에서는 다양성과 상세함이 보이므로, 전반적으로 국가의 성장을 위한 요소들을 직접적으로 주장하기보다는 서유견문의 특성인 개화의 큰 틀 형성에 초점을 맞춘 시무책으로서의 집필 의도가 드러난다.

 

본 연구의 의의는, 기존에 단순히 유길준의 정치사상을 파악하는 데에만 쓰이며 정치적 표현을 한 단어씩 뜯어서 연구되고, 또 어휘 중심으로 근대적인 변화 양상이 연구되었던 것과 달리 서유견문이라는 텍스트를 전반적으로 보면서 서양문물의 소개라는 기본적 형태를 어떤 식으로 달성하는가 살펴보았다는 점에 있다.  으로서의 특성을 감안하는 동시에 책이기에 나타나는 특징들을 더 잘 확인하고자, 서양문물 소개의 또다른 대표적 매체인 신문을 비교에 활용했다는 특징이 있다. 다만 본 연구의 한계 역시 신문을 비교로 활용하였기에 발생하는데, ‘서유견문에 대한 인식이 신문 분석의 대응에 머무르고, 실제 역사적 사건들로 더 넓게 확장하지 못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주)

18)최덕수, 유길준의 서유견문, 기록과사람인40, 2017, 43-44면.

19)최덕수, 위의글, 44면.

20)김석근, 조진만, 19세기 말 조선의 ‘franchise’(參政權) 개념에 대한 인식과 수용, 한국정치학회보35.2, 2001, 53면.

21)김윤희, 문명, 개화의 계보와 분화(1876년~1905년) -개념의 의미화 과정을 중심으로, 사총79, 2013, 11면.


참고문헌

 

유길준, 서유견문, 交詢社, 1895

유길준, 서유견문, 허경진 옮김, 서해문집, 2004

 

일조각편집부, 유길준전서, 일조각, 1996

한성순보 순보서

한성주보 주보서

 

김남석, 19세기말 한국근대언론에 대한 언론인의 관념: 구한말 신문 창간사의 분석, 가라문화28, 경남대학교 가라문화연구소, 2016

김미지, 「『한성순보와 중국 개항장 신문의 관계에 대한 고찰, 인문과학110, 연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2017

김복수, 유길준의 개화운동과 근대신문 창간에 미친 영향, 한국언론학보44-4, 한국언론학회, 2000

김윤희, 문명, 개화의 계보와 분화(1876~1905) -개념의 의미화 과정을 중심으로, 사총79, 2013, 11.

김석근조진만, 19세기 말 조선의 ‘franchise’(參政權) 개념에 대한 인식과 수용, 한국정치학회보35.2, 2001

金容浩, 漢城旬報에 관한 文化的 解釋, 언론문화연구6, 서강대학교 언론문화연구소, 1988

박정규, 朝報漢城旬報의 관계에 대한 考察, 한국사회과학연구10, 청주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1991

박정규, 漢城旬報朝報에 관한 硏究, 한국언론학보16, 한국언론학회, 1983

서태열, 유길준의 서유견문(西遊見聞)에 수록된 세계지리 내용에 대한 고찰, 한국지리학회지8.3, 2019,

이상재, 漢城旬報구성의 연원과 학술기사의 재구성 양상,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석사학위논문,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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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백, 개화기의 언론 수용자운동, 한국언론정보학보18, 한국언론정보학회, 2002

한보람, 1880년대 조선정부의 개화정책을 위한 국제정보수집 :漢城旬報·漢城周報의 관련기사 분석, 진단학보100, 진단학회,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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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름>, 김홍도

 

하얀 옷자락이 펄럭인다. 수분을 머금은 모래 덩어리는 거세게 부딪히는 발아래에서 짓눌린다. 나는 눈을 감는다. 함성과 거친 숨소리를 귓가로부터 밀어낸다. 그리고 가만히, 가만히 침전한다. 저 모래 속으로, 눅눅하게 서걱거리는 차가움 속으로. 서로의 바지춤을 잡고 씨름하는 선수들 밑, 무겁도록 서늘한 대지 안에 어느새 나는 있다. 양쪽 귀가 먹먹해진다. 쭈그려 앉는다. 고개를 파묻는다. 점점 더 모래로 덮여가는 나를 꺼낼 수는 없다. 선수들의 발밑에서 다져지는 토양, 튀기는 모래알. 그 모든 것은 저어 위에서 숨쉬고 나는 여기에 존재한다. 다시 박차고 올라가기엔 축축해진 흙이 가슴을 눌러 숨을 쉴 수 없다. 언제까지나, 어쩌면 언제부터나

 

딱히 씨름을 구경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여기 앉아있었을 뿐인데 사람들이 오고 판이 벌어지고 늘 동네를 돌아다니는 엿장수 아이가 오고 씨름이 시작되었다. 시끌벅적하다. 북적이는 분위기 속에서 떠도는 존재는 홀로 가라앉는다. 씨름장으로부터 약간 뒤편에 앉아 희멀건 시야로 앞을 쳐다본다. 저 선수들. 벌개진 얼굴과 솟아난 힘줄에서는 열정의 색채가 진동하고 있다. 순간으로 충만한 그 색채를 나는 바라보는 것일까. 하지만 침전하는 시야에서는 현재의 박동조차도 뿌옇게 흐려져 울릴 뿐이다. 활기찬 분위기 속에 나는 있다. 그렇기에 더욱 활기찬 분위기 속에 나는 없다. 씨름하는 저 선수들처럼 공기의 성정을 뒤틀고 흔드는 힘을 발휘하고 싶은 것일까. 결국 차가운 모래에 파묻히리라는 걸 아는 자의 몸부림에 불과할 텐데.

 

씨름 후는 공허하다. 일부러 그 공허함을 마주하려던 것 역시 아니었다. 그저 처음과 똑같이 여기 앉아있었을 뿐인데 사람들도 엿장수 아이도 선수들도 그 열기도 함성도 색채도 박동도 모두 떠나갔다. 채워져 있던 존재만이 지워질 수 있기에 가득 차 있던 씨름의 시간은 더 큰 허무함으로 귀결됨이 분명했다. 모두 이렇게 허무함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삶인가. 나는 어쩌면 기쁘다,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그러나 하강하는 기쁨이 침전하는 나를 끌어올려 줄 수 없음은 당연하다.

 

이곳에서는 또다시 씨름이 열리겠지. 그 열기와 작열하는 힘. 그리고 나는 그때에도 여기에 가만히 있을 테다. 모래의 찬 기운은 다시금 나를 둘러싼다. 그 습한 기운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아니 그것조차 아닌가. 습기가 나를 잠식하도록 가만히 있을 뿐인가. 위에서는 함성이 들린다. 그 함성을 밀어내려 더욱 고개를 숙이고 먹먹한 토지 속에 나를 가라앉힌다. 언제까지고.

 

-씨름을 보며

 


문학글 게시판도 따로 만들까 하다가 말았습니다. 씨름도를 보고 흔히 느끼는 분위기와는 정반대의 글을 적어보고 싶었던 결과물입니다. 나중에 작곡을 배우면 가사로 써먹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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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이쁜 잔에 담아서 먹고.. 하루는 평소에 술마실 때 쓰는 유리컵에 담아서 먹고..

-종류 : 커피 리큐르

-도수 : 20%(...인데 2021년에 16%로 내려갔다. 이전 버전으로 마시고 싶어서 일부러 와인앤모어 가서 이전 버전의 20%짜리로 사왔다)

-색 : 짙고 반투명한 갈색. 커피 시럽 같은 색.

-구입처 및 가격 : 와인앤모어, 16000원

-구매 이유 : 19년도에 선배들이 우유 : 깔루아 = 7 : 3 으로 타준 걸 먹었을 때 너무 맛있었어서... 그 맛을 다시금 느껴보고자 구입함. 시험 끝나고 금주령 해제 기념으로 마시기 위해 미리 사두었었음.

-구매 후기 : 달다. 너무... 지나치게.. 달다.

그냥 쌩으로 마시기엔 너무 달까봐 시도조차 안했고

야매 깔루아 밀크로....만들어서 먹어봤는데

 

처음에 우유 7 깔루아 3정도로 섞어봤는데도 달아서

우유 10 깔루아 1 정도로 섞으니까 그제야 적당히 달고 맛있었다.

그정도면 뭐.. 약간의 알코올이 함유된 커피우유 수준

진짜 '이건 술이 아니라 커피시럽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우유랑 섞어야 알맞은 당도가 나오는 듯 하다

베이킹에 써먹어도 괜찮을 듯.. 그만큼 달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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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유견문의 서양문물 소개 분석

 

1. 한성순보주보와 서유견문의 서양문물 소개 비교

 

한성순보와 주보의 국외 소식 기사는 대외정세에 대한 것과 근대문물에 대한 것으로 분류할 수 있다. ‘서양문물에 추상적 요인도 포함을 시키기로 서론에서 정의했으므로 대외정세에 대한 기사도 연구에 포함하기로 한다. 당시 정부가 입수한 국제자료를 선별하여 수록한 이 기사들은 순보와 주보에서 조금의 차이가 있기에 이를 밝혀 적는 것이 합당할 테다.

우선 대외정세를 다룬 기사는, 순보에서는 기본적인 세계 지리정보, 청 중심 전통적 동아시아 국제 질서 변화에 초점을 맞춘 반면 주보에서는 청 중심 세계관에서 벗어나 서구열강의 구도를 파악하는 것에 관심을 두었다. 열강과 약소국 관계에 대한 현실적 인식을 돕고 그 속에서 조선이 약소국으로서 독립국으로 생존하는 것에 대한 정보들이 실렸다.*13) 순보에는 약소국이 강대국에 도움을 요청하는 내용이 나와있고, 주보에는 강대국의 약소국 식민지화를 다룬다. 군사 기사는 순보는 주로 서구의 군사력 동향을 다루고, 주보는 열강의 군사력 및 그 확장, 특히 일본의 군사력 확장을 다루는데 해군 확장 소식의 빈도가 높다. 순보에서는 통사의 중요성을 막연히 강조하는데 주보에서는 주변국인 러시아, , 일본 등의 무역 현황을 다룬다. 철도 기사는 순보에서는 열강의 선진적 철도 사업, 철도 부설의 필요성을 말한다면 주보에서는 청과 일본의 철도 부설사업을 더 보고한다.*14) 즉 정리하자면 순보에 비해 주보는 일반적인 개화 지식의 전달에서 벗어나, 보다 조선의 특수한 사정에 맞고 구체적으로 얽힌 주변국에 집중된 정보가 전해졌다. 열강들로부터 위협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의도가 보이는 것은 공통적이다.

 

근대문물 관련 기사는, 순보, 주보모두 개화정책의 핵심 분야인 군사, 산업, 재정, 교통, 통신, 통상 관련을 두루 수록했다. 다만 주보에서는 근대문물 소개 차원의 다양한 부문의 기사는 줄고, 재정 확보 부문에서는 회사제조업 소개기사보다는 광산 관련 기사에 집중한다. 신문물을 두루 알리는 것에서, 현재의 정책에서 주력하는 특정 분야에 집중하였다. 또 군사 부분 설명이 주가 되어 외국기사 중 순보에서는 6.3%, 주보에서는 12.6%를 차지했다. 그 뒤로는 순보는 산업(4.4%), 재정(3.7%), 교통(3.3%) 순서였으며. 주보는 교통(5.6%), 산업(5%),재정(3.8%) 순서였다. 참고로 한성주보는 청불전쟁 관련 기사가 48.8%로 압도적으로 많다.*15) 이를 통해, 한성순보와 주보는 신문이라는 특성에 부합하게 당시의 시급한 일, 그리고 조선의 현재의 위치를 지켜내고자 하는 목표가 드러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산업과 재정, 교통은 곧 국가의 힘을 키우기 위한 개화의 기반을 닦는 것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서유견문에서의 서양문물 소개는 어떠할까. 서유견문의 목차는 총 20편으로, 서론인 1, 2편은 서론, 3邦國權利부터 14商賈大道까지는 본론, 14改化等級은 결론, 15~20편은 보론이다. 각 주제에 대한 유길준의 중요도 인식을 살펴보고자 분량순서에 주목했다.

 

순서상 앞에 오는 것에 중요도를 두었을 것이라고 전제하여 앞 단원들을 살펴보면, 1, 2편은 세계 지리를 다루면서 1편은 지구 세계의 개론, 6대주의 구역, 나라의 구별, 세계의 산에 대해 이야기하고 2편에서는 세계의 바다, , 호수, 인종, 물산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그 뒤에 이어지는 3, 4편은 권리에 대한 내용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듯한데, 3편은 나라의 권리와 국민의 교육을 다룬다. 이때 교육챕터는, 구체적인 교육 제도나 서양식 교육의 양상 소개 등이 아니라, 나라의 존망에 있어서 국민교육이 가지는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단원이다. 4편은 국민의 권리와 인간 세상의 경쟁을 다루는데, 여기서 경쟁은 국민들이 각자의 길에 힘쓰면서도 모두 합하여 의지하는, ‘훌륭한 경지에 나아가려는 勉勵’(134)를 가리킨다. 5, 6편에서는 정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5편은 정부의 시초와 정부의 종류, 정부의 정치 제도를 다루고, 6편에서는 정부의 직분에 대해 이야기한다. 각 편의 분량은 대략 25페이지 정도로 유사하게 맞처져 있다. 따라서 위의 지리, 권리, 정부의 주제가 각각 2편씩을 차지하고 있으므로 타 주제 비해 순서뿐 아니라 분량에서도 앞선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해당 요소들에 대해 유길준이 부여한 중요성이 크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3, 4편의 경우 포괄적으로 개화된 국가로서의 정치 사상 및 국민 태도를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묶을 수는 있지만, 타 챕터와 달리 명시적인 하나의 제재로 묶기는 어렵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14편 후반부의 개화의 등급도 책의 결론 부분이라는 점에서 중요할 것이다. 해당 챕터에서는 아직 개화하지 않은 자’, ’반쯤 개화한 자’, ‘개화한 자로 등급을 나누어 각각에 대해 이야기하고,(394) 또 이와 관련된 개화에 대한 태도로서 개화의 주인’, ‘개화의 손님’, ‘개화의 노예를 언급한다(396). 개화의 신기함과 그 근본은 예와 요즘이 동일하지만, 조선의 후배들이 옛것을 윤색하지 못하는 것을 문제 삼으면서 마무리된다.(402)

 

그렇다면 한성순보주보에서 분량상 중요하게 다루어졌던 군사, 산업, 재정 분야가 서유견문에서 어떻게 다뤄지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신문의 해당 내용에 대한 주목은, 열강의 위협을 실감하던 상황 속 당장의 위협에 대처하고 조선의 국력을 키워 장기적으로도 국제 정세에서 살아남기 위한 목적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판단했었다. 서유견문에서의 서술을 보면, 군사에 대한 내용은 9편 후반부의 군대를 양성하는 제도, 그리고 13편 중반부의 서양 군제의 내력에 대한 내용이 있다. 전자는 군사의 방비로서 중요성, 그리고 군사를 양성하고 운영하는 법과 세계 각국의 군사와 군함의 수를 다루고 있고, 후자는 1300년대에 총이 처음 나오고서 총기술이 점차 발달하다가 이제 나폴레옹의 군제를 따르게 된 것에 대한 서술이다. 산업의 경우에는, 부록에 해당하는 18편에서 증기기관, 와트의 약전, 기차, 기선, 전신기, 전화기 등의 기술과 회사에 대한 내용이 있다. 각의 주제에 대해서 그 모습과 방법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고, ‘회사부분을 제외하고는 이를 조선의 발전과 직접적으로 연결짓지 않고 있다. 재정의 경우에는 7, 8편에서 다뤄졌는데, 7편에는 세금 거두는 법규, 납세의 의무, 8편에는 세금이 쓰이는 일들, 정부에서 국채를 모집하여 사용하는 까닭에 대한 것이 나와있었다. 10편에 화폐에 대한 설명에서도, 정부의 역할이 소개되어 재정에 넣을 수 있을 듯하다. 이처럼 한성순보와 주보에서 주목되던 내용은 한 데에 묶이지 않고 부록 등에 분산되어 등장한다는 점, 그리고 분량적으로도 적다는 점에서 유길준의 중요도 파악에서 뒤로 밀려났음을 추론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각각의 주제에 대한 작성에서는 다양성과 상세함이 보이므로, 국가 개혁을 위한 시무책으로서의 집필 의도가 드러난다.

 

 

2. 서유견문의 서양문물 소개 특성의 함의

 

우선 내용적인 측면에서 그 특성을 살펴보면, 서유견문의 서론으로서 순서상으로도, 분량상으로도 압도적인 지리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유길준이 일본 유학 후에 쓴 세계대세론에 비해 미국까지 유학을 하고 쓴 서유견문에서는 산, , 바다, 나라 등의 이름 그리고 인종, 제도의 영어 발음까지, 상세하고 체계적으로 제시되었다. 1편과 2편의 지리 서술의 공통점은 두 챕터 다 뒤쪽으로 갈수록 부분화되고 소규모화된다는 것이다. 1편에서 태양계, 지구, ·서 반구, 6대주, 국가, 의 순서였다면 2편에서는 대양, , 호수, 인종과 물산의 순서였다. 이렇듯 소분류로 나아가는 진행은 세계적인 시각을 전하면서도, ‘그 속의 방국으로서의조선을 인지하게끔 한다.*16) 이러한 지리 서술은 개화를 위한 기초적인 지식을 펼쳐놓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이 지식을 먼저 주지 않고서는 서양의 문물제도를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어가 있다, 유길준 스스로도 세계지리서인 위원(魏源)해국도지를 읽음으로써 근대화의 시각을 얻었다.*17) 여기에서 신문들과의 공통점이자 차이점이 드러난다. 한성순보와 주보에서는 기초적인 지식으로서 실질적인 군사, 산업, 재정의 내용이 필요하다고 보았지만 서유견문에서는 당시의 폐쇄적인 세계 인식을 깨기 위해 서양 국가와 위치와 인종, 산물 등 기본적인 지리적 소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는 에서 보았듯이 실제 조선의 정치적 현실을 담아내는 것을 주된 목표로 하지 않았던 서유견문의 시대성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서유견문은 전반적으로 국가의 성장을 위한 요소들을 직접적으로 주장하기보다는 개화의 큰 틀을 형성하는 데에 초점을 두고 있으며 지리 서술 역시 그 일환일 것이다.

 

또한 서유견문은 근대화의 기본적인 기반으로서 사상적인 내용과 정부에 대해 다루는 내용이 지리 바로 뒤에 오며 그 분량도 타 주제에 비해 많다. 그리고 군사, 산업, 재정에 대해 다루는 것이 신문보다 작고 한 단원이 아닌 여러 편에 산개된 형태이다. 그 셋 중에는 재정의 비중이 많다, 이는 어떤 함의가 있을까. 한성순보와 주보에 비해 서유견문에서는 근대화를 위한 기본적 인식의 틀 정립을 위한 세계적 지리 인식과 정치 사상적 개념들이 주목되었고, 신문과 마찬가지로 군사, 산업, 재정의 개혁을 위한 서술이 이루어졌으나 이를 특별히 더 중요하다고 여기지는 않았다.

 

위에서 내용적인 측면을 살펴보았다면, 마지막으로 살펴볼 것은 보다 구체적인 서술 방식 및 어조이다. 서유견문의 특징으로는 의미의 새로운 정의, 그리고 한 나라를 비유하자면 한 집과도 같아’(85) 등의 비유적인 표현, 특정 서양 학자의 이론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의견을 소개하면서 서양 학자들은이라는 방식으로 말하는 것 등이 있다. 즉 서술 방식과 어조에 있어서, 현재 조선의 시국에 대한 직접적 거론과 주변국의 현 동향에 대한 분석을 담은 시무책이 아니다. 새로운 개념을 들여온다는 입장에서 그 개념의 정의내리기 작업부터 수행하고, 포괄적 이론들을 들여오며 전반적인 개화사상의 기틀을 세운다. 이는 내용 구성 측면의 함의와 맞물린다.

 

 

(다음 글에서 이어짐)


주)

13)한보람, 1880년대 조선정부의 개화정책을 위한 국제정보수집 :漢城旬報·漢城周報의 관련기사 분석, 진단학보100, 진단학회, 2005, 291면.

14)한보람, 위의글, 316-327면.

15)한보람, 위의글, 291-298면.

16)서태열, 유길준의 '서유견문(西遊見聞)'에 수록된 세계지리 내용에 대한 고찰, 한국지리학회지8.3, 2019, 388-389면.

17)서태열, 위의글, 37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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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서 두번째가 한산소곡주. 일단 이날 먹은 술 중에서 한산소곡주만 리뷰해보기로....

-종류 : 전통주. 청주.

-도수 : 18%

-색 : 사알짝 누런빛 도는 투명한 색

-구입처 및 가격 : 동기가 받아옴^^ 와인앤모어에서 사면 한 18천원~2만원 정도 하는 것 같다

-후기 : 진짜

          맛있다

              !!

 

꽤 단 편이고,, 향긋하다.

발효주 특유의 단맛을 원래 딱히 안 좋아하는 편인데... 이건 맛있게 달았다

 

알코올 맛은 정말 하나도 안 난다.

내가 아는 18도짜리 술들은.. 다 공업용 알코올 맛 나는 술들밖에 없었는데

이건 전혀 그렇지 않아서 너무 좋았다.

 

단맛나는 술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취향이 아닐 것 같긴 하..지만

나는 완전 맛있게 먹었다

앉은뱅이 술이라는 별명이 왜 있는지 알 것 같다,,, 달아서 아무생각 없이 걍 막 마시다 보면 어느새 겁나 취해있다

 

가격도 나름 (가난한 대학생인 나도) 살 만 해서

나중에 친구들끼리 놀러간다거나 할 때 사갈 것도 같다

아니면 고딩 때 쌤들 찾아뵐 때 하나 드린다거나,,, 

 

질감도 살짝 꿀렁꿀렁하는 액체 느낌..? 뭔가 전통주 하면 떠오르는(?) 그런 농도,,

 

전에 어떤 선배가

사케 맛이 청하 맛이랑 비슷하다고 하는 걸 듣고서

청하의 그... 소주 식감인데 막걸리 향이 나는 그 애매함을 싫어하는 사람으로서

사케는 시도해볼 생각조차 안하고 있었는데

한국 전통 발효주가 이렇게 맛있다면,, 일본 발효주도,,, 비슷하게 맛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

사케도 먹어보고 싶어졌다

 

근데 제목을 항상 '술 기록 nn번째 - 술이름 : 제조사'로 쓰려고 했는데...

이건.. 한산 지역에 양조장이 되게 다양하게 있네... 제조사 쓰기 애매하다,,,,, 안써야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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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유견문의 시대성에 대한 탐구

 

1. 서유견문 서술 과정 및 수용에서의 시대성 적용

 

을 위한 신문과의 비교 작업에 앞서 먼저 서유견문 자체의 시대성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서유견문은 유길준이 귀국 후 한규설의 집에 연금된 상태에서 1886~9년에 집필하여 95년에 출간한 서적이다. 유길준은 1881, 신사유람단으로서 일본에 가서 당시 유명한 문명개화론자인 후쿠자와 유키치의 게이오의숙에 입학했다. 이후 그는 18839월 보빙사로 미국에 파견되어 유학 생활을 하며 서유견문을 위한 자료를 수집하였다. 1884년에 갑신정변이 일어나자 이듬해 9월에 귀국 명령이 내려졌고, 188512월에 귀국하고서 한규설의 집에 연금되었다. 그러나 비교적 자유로운 집필 활동이 가능하여 약 4년간 서유견문을 집필하고 1890년에 초고를 고종에게 바쳤다. 1892년에 이르러서야 연금에서 풀려난 유길준은 갑오개혁 후 일본 파견 보빙사에 수행원으로 참여하였고 일본에 갔을 때 후쿠자와 유키치가 운영하던 도쿄 교순사에서 1895년에 서유견문을 출간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집필, 출간된 서유견문은 유길준이 생각한 이상적인 개화의 이야기가 담긴 책으로 일종의 이론서로서의 성격이 있다. 물론 근본적으로는 문물소개서이기에, 서양문물에 대한 긍정적 시각이 기본적으로 자리하고 있지만, 아예 이상적, 비현실적인 내용만이 담겨있는 것이 아니며, 실제로 서유견문 속 정치, 문화 등의 많은 서술은 이미 서양에서 시행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는 서양에서의 상황이었을 뿐, 개항과 개화가 이루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조선의 현실과는 꽤나 차이가 있는 건 당연했다. 이러한 현실의 차이, 그리고 신문과 책이라는 매체의 종류의 차이는 서술의 방식에도 영향을 끼칠 것 역시 당연한 사실이다. 따라서 이어지는 절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분야에서, 어떤 방식으로, 어느 정도까지 차이가 나는지를 확인하고자 한다. 이를 확인하는 이유는, 에서의 신문과 서유견문의 서양문물 소개 양상 비교가 공정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우선 둘 사이의 근본적 차이를 인지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본 연구에서는 서유견문과 한성순보주보의 비교를 통하여 드러나는 차이점을 한성순보의 한계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유견문에 대해 알아보는 도구로 삼을 것이다. 이어지는 절에서는 서유견문이 당시 정치 사회 문화와 어떻게, 얼마나 차이가 있었는지를 구체적으로 확인하고자 한다.

 

 

2. 서유견문 속 신문 서술과 한성 순보주보 비교

 

서유견문의 17新聞紙단원에서 바람직하게 여기는 신문의 요건은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우선 첫 번째는 기사의 내용 측면에서 조정 및 민간 비판, 여론 수렴국민 요구 전달, 농업 상업에 대한 업무를 널리 알리고, 군사, 학술 등을 다뤄야 하며, 법률이나 기계 등 주제의 전문성을 갖춘 글, 그리고 특정 독자층, 예컨대 여성 독자층의 집중화된 글도 나타나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내용이 상업의 현황, 물가의 등락을 알리는 데에 그치고 조정의 정치 법령이 잘 되었다거나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는 실리지 않는 신문은 적막하다고 표현한다.(458) 반면 한성순보주보는 조보를 자료원으로 하여, 대부분의 기사가 조보의 내용과 체재를 많이 따른다. 구체적으로 보면 순보 창간호의 국내기사는 지방관의 보고인 장계, 중앙관서에서 올린 건의, 국왕의 동정 기사가 모두 15건이었고 순보 제2호에서는 각도의 관찰사 및 암행어사가 보낸 보고서, 상소문, 국왕의 幸行, 영사들의 입경 소식 등이 게재되어있었다. , 내용 구성 면에서 조보의 성격이 강했음을 확인 가능하다.*1) 다만 국내기사가 조보의 성격을 강하게 띠긴 했으나 비중은 외국기사가 높았다. 한성순보는 세계 속의 방위鎭浸政令법도재정기계빈부飢饟인품의 선악물가의 고저 등을 정확히 밝히는 것에 목적이 있었다.*2) 이러한 외국기사를 적을 때, 총 외국기사 1,150건 중 571건이 중국의 정기간행물을 원자료로 사용했고 홍콩베트남을 출처로 한 것을 포함하면 중국 측 정보가 694개였다. 이에 비해 일본에서 입수하는 정보는 93건으로 비교적 소수였다.*3) 이처럼 중국 중심의 외국기사 수집이었기에, 청불전쟁의 발단, 전개양상, 청조의 대응방식에 주목하는 기사가 많았다. 다만 주보 시기에 가면 일본 측에서 얻는 자료도 늘어난다.*4)

 

두 번째로는 신문 보도의 신속성이다. 서유견문에서는 영국 정부의 아침 회의 내용이 오후에는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까지도 전해진 사례를 제시하며 외국 신문의 신속성을 강조한며, ‘여러 신문사들이 빨리 보도하기를 다투고, 구독하는 자들도 전파되는 사실을 빨리 알아야 즐겁게 생각한다고 말한다.(461) 반면 한성순보주보의 경우, 순보 제1호에는 기사의 날짜도 분명히 명시되지 않았고, 그나마 제2호부터는 날짜가 분명히 명시되는 기사가 대다수를 차지하였으나 중국 신문의 원 기사와는 약 두 달간의 시차가 있었다. 점차 시차가 줄고 마지막에는 시차가 한 달이 안 되기는 하지만, 이는 한성순보가 정해진 날짜보다 지연 발간되었을 가능성이 있기에 신속성 향상의 근거가 되기는 어렵다. 음력 611일자 한성순보 29호에 음력 66일에서 15申報의 기사들이 대거 실린 것이 지연 발간의 상황을 보여준다.*5)

 

세 번째로는 신문의 대중 인기 및 판매 정도에 대한 것이다. 서유견문은 신문을 사보는 자가 있은 다음에야 신문을 판매할 수 있으니, 이를 미루어 본다면 신문도 상업의 한 가지라고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서양 국가들에서 신문을 활발히 판매하는 양상, 신문에 광고를 게재하여 광고료를 받는 방식도 소개한다. 반면 한성순보에서는 창간 시 이노우에 가쿠고로가 고문으로 참여하자 일부 친청 보수세력 중심으로 서양과 일본에 우호적이라며 반발이 일었고, 갑신정변 때 박문국이 불타서 폐간된 것도 그러한 반감이 일부 작용하였다고 추론할 수 있다. 1888714일 박문국이 경영난 등으로 교섭아문에 통합되며 한성주보가 폐간된 것 역시, 신문이 인기가 없었거나 판매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순보는 전국 관서에 고루 배포되었으며 발행 부수를 보면 감영, , , 진의 관리, 민간인, 외국에 나가있는 관리, 일본인 등도 구독하였지만, 많은 발행 부수에도 불구하고 구독료는 잘 걷히지 않았다.*6) 이외에도 재정적 운영의 어려움을 보면, 18831227일에는 박문국이 인천 해관에서 해관세를 빌리기도 하고, 갑신정변으로 폐간된 후에도 밀린 구독료(1부당 순보 3, 주보 5)를 거둬들여야 했다. 순보, 주보 발간과 박문국 운영을 위해 특별세도 거두었고 세금 걷는 것에 관련한 京主人의 행패와 폐단도 많았다. 또 한성주보 제4(1886.2.22)부터 광고를 실었지만 광고료에 대한 기록은 확인되지 않으며 설령 값을 받았더라도 적은 액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7)

 

네 번째는 신문 제작 참여 주체에 대한 것이다. 서유견문은 기자들이 신문사에서 월급을 받으며 일하는 모습을 소개하며, 신문에 글을 싣는 것의 자유도, 기고에 대한 국민의 적극성이 높아야 한다고 말한다. ‘누구든지 좋은 의견을 글로 써서 신문사로 보내면, 신문사에서도 역시 사양하지 않고 반드시 신문에 실어 세상에 전파하는 충의, 공분심을 고취하는 것이 신문의 큰 기능 중 하나라고 말하고 있다.(462) 반면 당시 한성순보 발간을 준비한 이들은 일반 신문사의 기자가 아닌 정부 소속의 책임자로서 박영효, 실무자로서 유길준, 지원을 위한 내한한 일본인의 구성이었다. 민씨 세력과 개화당 모두 정부를 발간 주체로 규정하여, 순보는 애초부터 관보의 정체성을 지녔다.*8) 또한 기사는 실무 담당자인 동문학 주사들이 작성했지만 독판의 비준이 있어야만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의 업무가 처리될 수 있었기에 보도는 독판의 성향에 영향받았다. 이때 독판은 친청 보수 인물이나 時務를 중요하게 여긴 개화 지식인이 임명되었다.*9)관직이 없는 사람의 투고는 그 내용을 따지지 않고 別本으로 출간하기로 했다.’*10)라는 기록으로 보아 독자 투고가 이루어지긴 했지만, 앞서 보았듯이 정부 주체의 관보로서의 성격, 그리고 독판의 성향에 영향받았다는 점에서 자유롭고 비판적인 투고는 어려웠을 것이다.

 

다섯 번째는 정부와 신문의 관계에 대한 것으로서 서유견문에서는 신문은 정부의 허가를 받아 간행되고, 또 정부에 대해 신문이 잘잘못을 따지고 국민의 요구를 전달하여, 정부와 국민 모두 삼가서 행동하게 된다고 말한다. 즉 신문과 정부 간 상호 견제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정부에 모임이 있을 때나 법원에서 판결이 있는 날에 기자를 초청한다는 내용의 소개는 언론에의 정보 공개의 당연시를 추구하는 태도를 보여준다.(461) 한성순보의 발간자들은 기사내용을 褒貶勸懲하여 안으로는 백성을 교화하고 밖으로는 外侮를 막는데 목적이 있었기에*11) 국민에 대한 교화 목적은 있었으나 정부 발행 신문의 성격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정부에 대한 신문의 견제 수행은 어려웠고, 정부의 신문 견제 역시 정부가 직접 발행하는 것을 견제라고 말하기 어렵다.

 

이와 같이 다섯 가지 영역에서의 차이점을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백과사전적 개화 사상서로서의 서유견문과 실제 현실의 차이점의 분야, 방향성, 정도를 확인할 수 있다. 먼저 군주정 하에서의 관보로서 내용과 형식이 조보와 유사했고 발행 주체의 의도 자체가 정부 비판이 어려운 구조였으며 언어도 한문 중심이었다는 점이 서유견문과 달랐다. 즉 정치적인 면에서 서유견문이 상정하던 사회와 조선의 군주정 현실이 달랐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이다. 그리고, 과거부터 존재하던 조선 사회의 폐단이 서유견문에는 반영되어있지 않다는 점이 있었다. 京主人의 구독료 수취 횡포 등이 여기에 속한다. 또 현실과 서유견문 속 신문 서술에서 신속성의 차이는, 서유견문이, 비록 책 자체에서도 여러 기술을 새로운 것으로서 소개하고 있음에도, 문화적 서술에서는 이미 해당 기술 발전을 상정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당시 조선은 외신을 접수할 수 있는 연락망이나 인프라가 극히 제한적이었고, 일본-조선-청국 간 우편선의 소요 시일은 최단 610일이었다. 따라서 상해, 홍콩의 여러 일간 신문을 열흘에서 1주마다 발행하는 신문이 따라잡기 어려웠다.*12)

 

 

(다음 글에서 이어짐)


주)

1)박정규, 「 漢城旬報와 朝報에 관한 硏究」, 한국언론학보16, 한국언론학회, 1983, 197면.

2)한성순보 순보서.

3)한실비, 漢城旬報의 淸佛戰爭 보도에 나타난 개화지식인의 대외인식, 단국대학교 사학과 석사학위논문, 2014, 11면.

4)한실비, 위의글, 40면.

5)김미지, 『한성순보』와 중국 개항장 신문의 관계에 대한 고찰, 인문과학110, 연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2017, 28면.

6)정진석, 漢城旬報 周報에 관한 硏究, 관훈저널 신문연구36, 관훈클럽, 1983, 127면.

7)정진석, 위의글, 136면.

8)金容浩, 漢城旬報에 관한 文化的 解釋, 언론문화연구6, 서강대학교 언론문화연구소, 1988, 292면.

9)한실비, 위의글, 7면.

10)한성주보 주보서.

11)한성순보 순보서.

12)김미지, 『한성순보』와 중국 개항장 신문의 관계에 대한 고찰, 인문과학110, 연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2017,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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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시그니처인 왁스 밀봉이 너무 이쁘다,, 삐죽 튀어난 부분 잡고 당기면 뜯어진다. 

-종류 : 버번 위스키

-도수 : 45%

-색 : 주황빛 도는 색...꿀 색..?

-구입처 및 가격 : CU, 18500원

 

갤럭시 라이브 포커스 기능으로 찍었더니 뭔가..유리잔 옆부분 초점이 흐리다

 

- 구매 이유 : 유명한 버번 위스키들 4대장(메이커스마크, 와일드터키101, 버팔로트레이스, 짐빔블랙)..을 언젠가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늘 해왔었는데, 가격+도수 때문에 선뜻 사지 못하고 있었던 참이었음. 그러던 중 마침 시험 때문에 두 달 간 금주하던 게 끝나고서 집에 오는 길에 네캔만원 수입맥주나 좀 사려고 CU에 들렀는데... 리뉴얼한 술 매대가 눈에 들어옴,,

앱솔루트 보드카나 와인들도 있었는데 그쪽보다는 저 메맠 미니어처가 딱 보였음. 200ml면... 천천히 혼자서도 다 마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바로 삼. 

사실 와앤모든 남대문이든,, 더 싼 곳에서 살 생각이었었었었는데...... 두 달 동안 금주했더니 그런 건 다 모르겠고 일단 저걸 따서 마셔보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해서 걍 사 버렸다^^

18500원이면 뭐 그으렇게 비싼 것 같지도 않았고..

 

- 구매 후기 :

일단 왁스가 너무 이쁘다. 밀봉을 위해 병을 저 빨간 왁스에 담갔다 뺀다는데

그런 밀봉 방식으로 결정짓는 데에 디자이너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

 

맛은,,

향긋하긴 하다.. 근데 확실히 도수가 쎄다는 게 확 체감되는 맛..?

약간 달달한 향..?도 나는 것 같긴 한데... 뜨거운 느낌이 더 강함ㅎ..

이과두주를 먹으면 사과향 완전 좋다!라고 느끼지만 그보다도 내 식도가 어디있는지를 확인시켜주는 그 뜨거움이 더 강렬하듯이

위스키도.. 비슷하더라,,,,

 

그냥도 찔끔 마셔보고, 탄산수에도 섞어보고, 토닉워터에도 섞어보고, 콜라에도 섞어봤는데

그냥 먹는 거 or 콜라에 섞는 거...가 가장 나았음.

가장 향이 좋은 건 그냥 먹을 때인데..

나의 식도 보호(?)를 위해서는 콜라에 섞어마시는 게 더 나은 느낌..

과방에서 동기들과 해치움

근데 뭔가 

나는 주로 왓챠를 안주삼아 술을 마시는데

영화에는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는 게 

위스키를 홀짝홀짝 마시는 것보다 더 어울리더라,,

 

버번위스키에 대한 궁금증을 풀 수 있었다는 점은 좋았다

나중에 야칠 정도만 미니어처로 사마셔보고

맥주나 열심히 파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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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론 : 탐구 주제, 방법 및 자료의 적절성 분석

 

본 탐구에서는 서유견문의 서양문물 소개에서 드러나는 경향성을 파악하고자 한다. 서유견문 속 서양문물 소개와 당시 서양문물 소개의 대표적 도구였던 신문을 비교하는 것을 통해 서양문물 소개에 있어서 서유견문만의 특성을 알아볼 것이다. 이때 서유견문에서 이야기하는 내용과 신문은 조선의 현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반영이 되어있겠지만, 신문과 책으로서의 성격상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러한 차이를 기저에 두고 분석을 진행하고자, 에서는 서유견문과 신문자체에 대한 비교를 시행할 것이다. 여기에서 밝혀낸 신문과 서유견문의 성격의 차이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에서는 본격적으로 서유견문의 서양문물 소개를 분석할 것이다. 서유견문이 일반적인 신문의 서양문물 소개와는 어떻게 달랐는지를 알아봄으로써 서유견문의 특징적인 소개 양상을 찾아내고자 한다. 이어서 에서는 그러한 경향성이 드러나게 된 원인을 저자 유길준으로부터 도출해낼 것이다. 이때 주제의 서양문물이란 물질적 요소뿐 아니라 추상적, 사상적 요소도 포함된 개념으로 정의한다. 즉 본 글에서는 서유견문에서 다루고 있는 서양의 정치사상 및 이론 소개 또한 문물 소개로 보고, 경향성 연구에 포함할 것이다.

 

유길준은 유학을 통해 개화사상을 지닌 대표적 인물이자, 정부의 일원으로서 여러 개화정책을 이끈 경력이 있는 인물이다. 그가 지은 서유견문은 1895(고종 32) 425東京 交詢社에서 발행되었으며, 양장본이고 20556쪽이다. 국한문혼용체라는 것이 특징이고, 사실상 견문 위주의 여행기라기보다는 외국 문물에 대한 소개, 그에 대한 유길준의 해석, 유길준의 개화사상이 서술되어있다. 당시 개화의 모델이던 서양문물을 바탕으로 하여 조선에 적용하고자 하는 부분이 담겨있을 것이다. 비록 백과사전식으로 서술되어있지만, 개인이 쓴 책인 만큼 그 내용과 구성에 주관이 담겨있을 수밖에 없다. 또 서유견문 자체가 단순한 사실 나열이 아닌, 저자가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국가의 모습을 담고 있다. 따라서 서유견문이 서양문물 소개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분석하는 본 연구는 개화기를 살아가던 지식인으로서 유길준의 태도를 읽고 그의 행적을 해석하는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서유견문의 서양문물 소개의 특성을 알아보는 데에 신문과 비교를 하는 방식을 채택한 까닭은, 서유견문만 두고 서양문물 소개의 특성을 살피는 것은 자칫 책에 대한 일률적 설명 나열에만 그치며, 당시 현실에 대한 평면적인 시각 반영만이 도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신문과 비교함으로써, ‘시대적 배경을 공유하고 있음에도 드러나는 차이가 곧 진정한 서유견문만의 특성이 될 것이다. 다른 많은 근대 신문 중에서 하필 한성순보(주보)를 선택한 까닭이 바로 그러한 시대적 배경의 공유에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다.

 

한성순보주보의 경우 처음에 유길준이 외아문 주사 자리, 즉 일종의 집필진 자리에 임명되었으나 박영효가 한성판윤에서 물러나 광주 유수로 좌천되고 6일 뒤인 1883416, 유길준은 신병을 이유로 외아문 주사 자리에서 물러난다. 6개월 후인 음력 101일 한성순보가 창간되었다. 발행부서인 박문국의 국장은 김만식(金晚樹)이었다, 한성순보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신문으로서 18831031일 박문국(博文局)에서 창간되고, 旬刊로서 열흘마다 간행되었으며 순한문이었다. 17×24의 크기로 1, 2호는 반엽 1747. 3호부터는 2347자였다. 순보로서 한 달에 3번 발행되었는데, 음력으로 매 1일에 발행되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음력은 작은 달이 29일이기 때문에 9, 혹은 12일 만에 발간되기도 하였다. 41호까지 발행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884109일 제36호까지는 결호 없이 정상적으로 발행되다가 1884124일 갑신정변으로 중단되었으나, 한성주보가 1886125일부터 다시 간행되어 18887월까지 이어졌다. 한성주보는 매주 월요일에 매 호 20페이지 분량으로 간행되었고 크기는 15×20였다. 한 페이지에 2040, 24호부터는 1640자였으며 처음으로 한글 기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한자 전용, 국한문혼용, 한글 전용 등 3가지 형태의 기사가 작성되었지만 33호부터는 한문 기사만으로 바뀐다. 첫 페이지는 표지로서 漢城周報라는 제호와 호수가 적히고, 두 번째 페이지는 발행일을 개국기원, 중국연호, 서력 순으로 기재했다. 마지막 페이지는 발행처인 中部 慶幸坊 校洞 博文局을 적었다. 123호까지 발행됐을 것으로 추정되나, 남아있는 신문은 1888312일자의 제106호가 마지막이다.

 

, 1883~88년에 간행되었던 한성순보주보와 180년대 초반, 유학길에서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하고 1886~1889년 동안 집필되어, 1895년에 출간된 서유견문은 시기적으로 유사하다. 또 한성순보는 유길준이 창간 과정에서 그 기틀을 세운 후 실제 간행 이후로는 관여하지 못한 신문이지만, ‘한성신문국장정’, ’신문창간사’, ’신문해설문등 한성순보 간행과 관련한 유길준의 짧은 글들이 전해지며, 해당 글들의 논조는 실제 한성순보주보의 간행 양상과 유사했다. 유길준이 입장이 신문과 책이라는 다른 매체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비교하기 더욱 적합하다.

 

 

-해제

 

제목: 西遊見聞

저자 : 유길준(兪吉濬, 1856~1914)

발행처 : 東京 交詢社

발행년도 : 1895

판본사항 : 金屬活字本

광곽 : 四周雙邊, , 1435

편수 : 2071항목

 

유길준은 박규수 문하에 출입하고 개화파로서 외국 유학을 간 인물로서, 1881년 조사시찰단의 일원으로 일본을 방문했다가 후쿠자와 유키치 문항 들어가 게이오의숙에서 공부했으며, 1883년에는 보빙사로 미국에 가서 2년간 유학 생활을 했다. 갑신정변 후 유럽을 거쳐 귀국항 연금되었는데, 서유견문은 그때 쓴 책이다. 1894년 갑오개혁 이후 내부대신을 지내면서 각종 개혁을 지휘했으나 1896년 아관파천으로 일본에 망명하고 1907년에서야 귀국이 가능했다. 이후 교육과 사회사업을 시행하고 노동야학독본대한문전등 여러 서적을 간행하였다.

 

서유견문은 일본, 미국, 유럽을 겪은 유길준의 견문을 바탕으로 서술되어 근대 초기 조선에 큰 영향을 미친 백과사전적 개화사상서이다. 출간 후 유길준은 상업적 판매 대신 무료로 1천 부를 찍어 배포했다. 표지에는 제목과 저자·출판사의 한자 표기가 되어있으며, 판권지에는 게이오의숙한 후배 격인 어윤적과 윤치오가 교열을 봤다고 되어있다. 후쿠자와 유키치의 서양사정등 외국 서적을 참조했으며, 세계의 지리를 서론으로 강조하고 이어서 서양의 각종 제도·문물·풍습을 소개하고 조선의 개혁 방향을 제안하는 시무책으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국한문체를 채택하고 근대적 어휘와 개념을 여럿 소개한 점도 특징적이다.

 

서유견문은 서문과 목차를 제외하고 총 2071개 항목에 달하는 본문으로 구성되어있다. 서론의 제1, 2편은 지구세계의 개론이라 하여 세계 지리를 상세하게 설명하는 내용으로서, 중국 중심 시각을 벗어나 전세계적 시야를 가지고 세계 속에서의 조선을 인식해야한다는 의도가 드러난다. 3~14편은 본론으로, 국가와 국민의 권리와 새로운 정치 사상을 소개한 후, 교육·화폐·법률·경찰 등 보다 자세한 국가 운영 제도를 소개한다. 14편은 상업을 논하고서 뒷부분에 결론인 개화의 등급론을 펼친다. 여기서 유길준은 개화, 반개화, 야만으로 문명의 등급을 소개하면서도 그 모두에게 개화의 가능성이 열려있음을 이야기한다. 이후 부록에 해당하는 제15~20편은 후쿠자와 유키치의 서양사정을 크게 참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여러 서양 서적에서 국제법, 경제 정책, 제도 등의 내용을 반영하기도 했다. 71개 항목 중 26항목이 서양사정을 번역한 내용인데, 그 대부분이 제15편 이후에 집중돼 있다. 부록은 서양의 다양한 풍습과 사회문화적 신문물을 나열하는 장으로, 기술적인 부분에도 주목한다. 부록 중에서도 마지막의 제19, 20편은 미국과 유럽의 여러 대도시를 소개하는 내용이다.

 

유길준은 서유견문을 통해 조선이 개화한 국가가 되는 기틀을 만들고자 했으며, 이를 위해 군사, 산업, 재정과 같은 구체적 국가 부강 노력도 물론 홀대하지 않았으나 그보다 앞서 일종의 기저 준비로서 조선 사람들이 보다 넓은 시각에서 조선을 바라보며 정치, 제도적인 인식의 근대화를 이루어 개화 사상의 기반을 세우고자 했다.

 

(다음 글에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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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배경은 왓챠 '웨스트월드'.. 시즌1까지는 일단 재밌다

-종류 : 필스너

-도수 : 5.3%

-색 : 

-구입처 및 가격 : CU, 3500원

-구매 이유 : 이때 한창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의 편맥을 하나씩 도장깨기하던 중이었는데.. 꿀꺽꿀꺽 마실 수 있는 라거가 땡겼다. 사실 필스너인 거는 못보고 샀다

-구매 후기 : 이 회사 꺼는 항상 평타는 치는 것 같다.. '완전 맛있다'를 기대하는 거까진 아니지만 적어도 실패는 없다

근데 내가 원했던 시원-청량-편하게 마시는 그런 라거는 아니었다

내 예상보다 훨씬 더 쌉싸름한 느낌?

예전에 수입맥주 4캔만원을 처음 먹어보던 시절에,, 이런 쌉싸름한 맛을 딱 처음 느꼈을 때

'뭐지 연잎이라도 갈아넣었나'하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약간 그런 느낌으로 쌉싸름하다

 

오히려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의 다른 캔맥인 노을수제에일..이 훨씬 덜 썼다

그리고,, 노을수제에일이 좀 더 내 취향이다

근데 뭐 이건 내가 필스너라는 글자를 못봐서 생긴 착오니까..

예상과 달랐지만 엔간한 맛

 

그으래도 여전히 편맥 필스너 중에는 필스너우르겔이 제일 취향인 듯

그게 내가 제일 처음으로&자주 먹어본 필스너라서.. 입맛이 거기로 맞춰진 건지 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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