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매 이유 : 치맥을 위해 교촌에 갔는데 테라 생맥주는 뭔가 지겨워서 다른 걸 시켜봤다.
마침 저 브루어리의 맥주들을 메뉴판에 커다란 광고로 담고 있길래.. 시켜봤다. 골든에일, 위트에일, IPA 이렇게 세 종류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날은 IPA가 마시고 싶어서.. 그리고 평소에도 맥주 최애는 IPA라서 저 백두산 IPA를 골랐다.
-구매 후기 : 저렇게 캔 자체가 나와버릴 줄은 몰랐는데... ㅋㅋ
원래 바깥에서 술 마시면 원래 가격보다 훨씬 비싸게 받는다는 것은 알지만,, 뭔가 막상 이렇게 캔으로 나온 걸 보니 좀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그래도 뭐.. 어쩔 수 없다
맛 자체는 엔간했다. ipa류 특유의 쌉싸름한 맛이 느껴졌고, 인위적인 향긋함이 없어서 좋았다.
가끔씩 너무 쌉싸름하다고 느껴질 때에는 달달 매콤한 치킨을 먹어주면 중화되어서 안주와도 잘 어울리던 선택이었던 것 같다.
+) 교촌치킨에 같이간 일행이 시킨 '한라산 위트 에일'을 먹어보니.. 그건 좀 애매했다. 밀맥주 특유의 바나나향이 느껴지긴 하지만, 묘하게 구수~한 거친 맛이 훅 치고 들어오더라. 위트에일은 좀 더 산뜻하게 바나나맛 + 플로럴향이 느껴지는 편이 더 내 취향인 것 같다.
가장 완벽한 꺾어진 각도는 무엇일까? 불명확한 언어의 나열에 그치는 것이 아닌 구체적인 수치를 도출해내고자 한다. 만약 외부 환경에 따라 변동적인 결과가 발현된다면, 외부 상황을 변수로 가지는 특정한 공식을 유도해낼 것이다.
- 완벽함의 개념적 분야에 따른 구분
가장 완벽하게 꺾어진 각도란 미적인 개념일까? 혹은 수학적, 어쩌면 종교적 개념일까? 이는 각각의 분야에서 '완벽', '꺾어지다', '각도'의 의미를 탐구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1. 미적인 개념일 경우
'완벽'은 미학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의 극치가 된다. 이데아 그 자체의 달성이나, 자연의 완전한 모방, 완벽한 객관적 지각을 가져다주는 진리, 혹은 자유로운 상상을 일으키는 즐거움으로서의 美까지. 그것도 아니라면 '규정된 미'는 없고 그저 개개인의 인식에 따라 변이하는 주관만이 美를 야기한다고 볼 수도 있다.
'꺾어지다'는 감각적으로 갑작스러운 변화를 주는 모든 것을 지칭할 수 있을 것이다. 직선이 아닌 구조의 물체부터 시작하여, 발레리나가 유연성을 뽐내며 음악에 맞춰 신체를 구부리는 것, 음악에서 갑작스럽게 이질적인 효과음을 넣는 것, 혹은 연극에서 '극적인' 변화가 찾아오는 것까지.
그렇다면 이러한 꺾어짐들에서 명확한 하나의 완벽한 '각도'를 도출해낼 수 있을까. 상술한 감각적 변화는 전부 起承轉結에서 轉의 시점이 '꺾어짐'의 순간이라고 할 수 있을 테다. 모두에게 그 轉의 순간이 명확해야 하고, 앞뒤의 承과 結과는 명확히 구분되어야 한다. 시간선이랄 것이 따로 없는 정적인 작품의 경우에도 '작품을 본 순간의 충격'에 기승전결과 카타르시스의 특성을 대입해볼 수 있다.
정리하면 미적으로 완벽하게 꺾어진 각도란 360도º의 각도 차원에 대입하였을 때 {(轉에서 충만한 카타르시스를 주는 심상 - 기존의 심상) / 轉에서 충만한 카타르시스를 주는 심상 } * 360º 이다.
2. 수학적 개념일 경우
'미분 가능하다'가 완벽일 경우 '가장 완벽하게 꺾어진 각도'는 미시세계의 범위에서만 가능하다. 미분가능성의 조건은 i)연속이어야 하고 ii)우미분계수와 좌미분계수가 동일해야 한다는 것 두가지이다. 따라서 '꺾어짐'이라는 속성은 일반적으로는 '완벽'과 양립할 수 없으며 오직 '무수히 잘게 쪼개져 연속이나 마찬가지인 꺾어짐'만이 완벽의 가능성을 지닌다. 이처럼 '무한'이 완벽일 경우 꺾어지는 것은 곡선 형태에 이르기까지 계속된다. 혹은 그러한 곡선이 원을 그리듯이 빙 돌아 형성된 하나의 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이는 가운데에 무한히 얇은 막대기를 두고 끊임없이 휘감기는 무한히 얇은 실을 떠올리면 된다. 실이 그리는 각도가 무한대로서 반복된다면, 이는 결국 하나의 막대기에 계속하여 돌듯이 휘감기며 그 막대기를 위에서 내려다본 점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정리하면 수학적으로 완벽하게 꺾어진 각도란 0º = 360º 또는 n ->∞일때 lim nº = ∞º 로 나타낼 수 있겠다.
3. 종교적 개념일 경우
완벽은 곧 신의 존재에 닿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신성한 꺾어진 각도라고 치환할 수 있을 것이다.
불교의 경우 차안에서 피안으로 넘어갈 수 있게끔 하는 空의 깨달음이 곧 신성함과 가깝다. 즉 空을 일정한 비율로서, 각도로서 치환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완벽한 각도가 될 테다.
크리스트교의 경우 예수의 형상을 떠올려 볼 수 있다. 단순한 시각적 모습으로서 피에타 석상이나 십자가에 매달린 모습을 떠올려도 좋겠지만, 이는 일차원적인 접근에 불과하다. '꺾어짐'과 유사한 크리스트교 개념은 - 비록 무신론자로서 알고 있는 성경 교리는 대학교 교양 수업 수준에 머무르지만 - 성경 및 예수가 무척이나 강조하던 광의의 사랑이 있을 텐다. 이는 신, 이웃, 더 나아가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사랑의 실천으로 이어진다. 예수와 같이 타자를 자신만큼이나 사랑할 때 비로소 옳게 행동하는 것이다. 따라서 모두를 사랑하는 마음과 현재의 인류애 간의 차이가 완벽한 각도로서 존재할 것이다.
힌두교의 경우 아트만과 브라흐만의 관계를 떠올려볼 수 있겠다. 브라흐만은 세상의 궁극적인 실체를 의미하고, 아트만은 개인의 진정한 자아를 뜻한다. 따라서 아트만이 곧 브라흐만에 닿을 때 인간은 깨달음을 얻는다. 따라서 기존의 아트만과 깨달음 달성 후의 아트만, 즉 아트만과 브라흐만 사이의 간극이 곧 '완벽하게 꺾어진 각도'의 힌두교적 의미가 된다.
정리하면 종교적으로 가장 완벽하게 꺾어진 각도는 인간의 불완전성에서 신, 또는 해탈의 완전성으로 가는, 그 간극만큼의 변화일 것이다. 공식으로 표현하면 {(완전한 神성or해탈 - 불완전한 인간성) / 완전한 神성or해탈 } * 360º 이다.
4. '존재'의 문제일 경우
세상 속에서 일정한 부피를 차지하고 있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양상의 존재일까? 모습이 인식의 구조물에 불과하다면 우리는 완벽성을 논하기 위해 인식 이전의 존재 자체를 살펴봐야할지 모른다.
부피를 움직이는 건 세상의 고정된 형태를 매순간마다 깨고 있는 것이다. 무수히 많은 입자가 각기 다른 형태로 모여있는 것을 우리는 세상이라 착각하고 있다. 입자의 조합 간 견고함의 정도 차이에 따라 경계면이 발생하고, 그 경계면들의 집합을 세상이라고 본다면, 이 세상은 사실 미세한 가루의 조합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 가루의 상태에 역동감을 부여하는 어떠한 성질을 가정하자. 설령 해당 성질이 운동성 없이 '고정된 상태'의 표출에 지나지 않더라도 형질적으로 변화의 가능성을 내재한다면, 즉 꺾어져있다면, 세상의 존재를 깨는 데에 기여하고 있다.
똑딱이 손난로에서 철 버튼을 똑딱일 때에 액상의 온도와 굳기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과도 이미지적으로는 유사하다. 물론 그것은 꺾어진 성질이 변화를 가져오는 눈속임일 뿐, 실제로는 '꺾는 행위'가 가한 충격의 결과물이라는 인과관계의 차이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다시, 꺾어진 상태에 놓인다는 것은 세상을 그 꺾음대로, 꺾어진 각도대로 휘감고 있는 것이다. 이는 소위 '지구 샌드위치'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서울과 완전한 대척점에 위치하는 아르헨티나의 동쪽 해안 도시 마르델플라타에서 각각 식빵 하나씩을 보도블럭에 내려놓으면, 가운데를 지구로 채워넣은 샌드위치를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 이는 세상을 휘감음으로써, 주체성의 위치를 기존에 대상화되던 소규모의 존재로 옮겨오는 방식의 하나이다.
즉, 세상을 자신의 존재로 인하여 명확한 영향을 끼치는 것, 단순히 세상에 하나의 被존재자로서 그 위치를 정립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라는 배경을 '배경'이 아닌 자신과 같은 '대상'으로서 만들어버리는 것이 존재론적인 '완벽함'일 테다. 그러므로 이를 달성하는 꺾어지는 각도는 세상을 자신의 자아로 휘감을 수 있는 정체성을 지녀야 한다. 즉, 내 존재에 따라 변이하는 세상을 가정할 때 그 변이의 정도가 극한까지 치달아야 한다.
정리하면 존재론적인 측면에서 가장 완벽하게 꺾어진 각도는, 우선 비율로 구해보면 max( δ세상 / δ내 존재 )가 되게 하는 '내 존재'이므로 ( δ세상 / δ내 존재 ) / δ내 존재 = 0 이 되게 하는 '내 존재'이다. 이를 a라 두고 360º의 체계에 대입해보면 내 존재 = a 일 때의 ( δ세상 / δ내 존재 )* 360º가 가장 완벽하게 꺾어진 각도가 된다.
- 완벽하게 꺾어진 대상에 따른 구분
혹은 '꺾어진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 그 완벽함의 성질이 미묘하게 다른 의미를 띨 수 있을 테다. 다만 이는 대부분 위에 서술한 내용과 겹칠 수 있어 간략히 어떤 개념과 연결될 수 있는지만 언급하고 넘어가겠다.
1. 명확하게 물질적인 대상일 경우
이는 미적인 개념 중 일부 시각적으로 인지 가능한 2차원, 3차원적 작품과 유사하다.
2. 추상적이지만 시각적 형상을 부여할 수 있는 대상일 경우
이는 미적인 개념, 수학적 개념과 유사하다.
3. 완전히 추상적 개념 속에만 존재하여 '꺾어지다'라는 시각적 성질의 동사를 대입하려면 구상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대상일 경우
이는 종교적 개념, 또는 존재론적 개념과 유사하다.
- 한계점
그러나 아직 한계점이 남아있다. 위에서는 '가장 완벽하게 꺾어진 각도'를 '불완전성'에서 '완전성'으로 가는 변화의 과정으로 가정하고 서술했다. 즉 '꺾어짐' 자체가 '완벽함'을 띤다기보다는 '완벽함으로의 길'로서 서술되어있다. 자주 사용한 공식의 기본 형태를 가져와보면 {(완전성-불완전성)/완전성 } * xº, 이때 x가 곧 완벽함이다. 그렇기에 x 자체가 아니라 x의 일정 비율이 '가장 완벽하게 꺾어진 각도'로서 정의되었다. 그로써 '완벽함'은 360º로 가정되었으며 비율로서 '완벽하게 꺾어진 각도'를 구했다.
이러한 가정이 과연 맞을까? '완벽함'의 각도와 '완벽하게 꺾어진 각도'를 분리해서 서술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일까? 이는 본론에서는 '꺾어지다'와 '각도'를 거의 유사어로 사용한 것에 반해, 기본 가정의 측면에서는 '꺾어지다'라는 특성에 지나치게 차별적인 지위를 부여한 것이 아닐까?
- 해결 방안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은 크게 i) 그러한 가정이 괜찮다는 의견, 그리고 ii) 새로이 '완벽한 각도'를 정의내리자는 의견이 있을 테다.
i)의 경우에는 '꺾어지다'의 동작성에 주목한다. '완벽하다'라는 성질 자체가 아닌, '꺾어진' 각도이기에 '완벽함'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하려는 앞에서의 서술이 옳다는 논리이다.
ii)는 어쨌거나 '꺾어진'은 문장에서 관형어로 사용되고 있으므로 '동작'보다는 '상태'를 나타낸다는 점에 주목한다. 따라서 이를 논리 전개에 반영하여 완벽하게 꺾어진 각도의 탐구 결과를 수정해야 한다. 즉 '완벽성' 자체를 특정한 각도로 찾아내어야지, 360º에 대한 비율로 나타내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위처럼 분야를 나누지 않고 통합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완벽하게 꺾어진 각도'는 없을까.
숫자는 추상의 의미와 물질의 의미를 모두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인식을 확대시키는 기반이 되어준다. 따라서 완벽하게 꺾어진 각도는 하나의 숫자로 나타내어도 충분히 추상과 물리의 의미를 전부 포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숫자가 무엇이 될지만 남아있다. 이는 흔한 업다운 게임을 통해 확인해볼 수 있다.
우선 180º보다는 작다. 수평의 각도는 무한히 이어져도 결코 하나의 점으로 귀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90º보다는 작다. 수직의 각도는 평행축과 결코 닿지 않고 뻗어나간다는 점에서 타 개념과의 양립불가능성을 내재하기 때문이다.
45º보다는 작다. 이는 정사각형의 대각선이 지면과 그리는 대각선은 '정'의 형질의 온전한 지지자라는 점에서 결코 해당 형질과 분리되어 인식될 수 없기 때문이다. 正에서 벗어날 수 없는 각도란 유연성을 결여하기에 모든 분야에 통합적으로 적용되는 '완벽함'과는 오히려 어긋난다.
업다운 게임을 보다 간소화하기 위해, '그렇다면 45º보다 구체적으로 얼마나 작을지'를 확인하는 단계로 나아가자.
45º는 正의 속성에 지배된다는 점에서 부족했다. 그러므로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또다른 완전성의 상징인 3º라는 숫자를 제해줌으로써, '굳어있는 완전성'을 제거해주어야 한다. 이는 45º가 결여하던 유연성을 부여하며 '굳은 완전성'에서 '완전한 완전성'으로 한 걸음 도약하게끔 뒷받침한다.
이렇게 42º라는 값을 도출해낼 수 있다.
따라서 완벽하게 꺾어진 각도는 42º가 된다. 다만 각도가 '오롯이' 42º일 필요는 없이, 42º의 성질을 어렴풋이라도 묻히고 있다면 이는 완벽하다. 그 꺾어짐 전체가 완벽하지 않더라도 일부의 특성이 완벽함에 닿아있다면 이는 곧 대상 전체로 확대되기 때문이다.이 경우라면 위에서 공식으로서 정리한 꺾어진 각도처럼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서도, 일상적인 각도도 모두 완벽성을 내재할 수 있다. 시간이 언제나 인식의 합리성을 늦추거나 앞당기는 함정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잠재적으로 42º의 성질을 띤다면 이는 사실상 현재라고 불리는 비존재성의 순간에도 역시 42º인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예컨대 타이레놀을 먹은 뒤 알루미늄 포장지를 그 절취선을 따라 꺾어두었을 경우, 이는 잠재적으로 42º가 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따라서 해당 타이레놀 포장지 역시 42º라는 측면에서의 완벽성을 표출해낸다.
출처 : 공부하다가 옆쪽에 꺾어서 놔둔 타이레놀을 보고 생각남. 쟤(=타이레놀)는 이쁜데 완벽하진 않으려나? 라는 생각.
-구매 이유 : 디자인이.. 마치 주체사상의 선전포스터를 보는 듯한 기분이?!? 노동주가 아니라 '로동주' 뭐 이런 식으로 써 있어야 할 것 같은... 폰트와 색감이다... 빨간색이 아니라 붉은색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은 색..!
하여튼 그래서 저 캔에 눈이 사로잡혀버렸다.
사실 그 이유만을 사긴 했는데... 나중에 보니 감미료와 착향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는 문구도 마음에 들었다. 물론 감미료와 착향료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며 그런 향을 더 집어넣어서 더 맛있어지는 맥주도 충분히 존재하겠지만... 편의점 캔맥들은... 감미료를 넣으면 보통 묘하게 인위적이고 향수같아지는 경우가 너무 많았어서.. 약간 안심이 되는 문구였다. '흠 적어도 액체비누 마시는 기분은 안 들겠구만'이라는 생각을 가져다주는 그런 문구.
-구매 후기 :
그냥 무난했다. 확실히 인위적인 향은 나지 않고, 구수한 풍미가 지배적이었다.
홍보 문구를 보면 꽃향과 허브향이 느껴지는 홉을 사용했다는데..
음........ 잘 모르겠다 ^^ 딱히 풍성한 향 같은 것은 잘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그냥 페일라거가 아니라 필스너인 만큼, 쓴맛이 적정한 정도로 맴도는 게 느껴졌다.
맥주에 막 장난치는(그리고 장난의 결과물이 이상한 경우가 대부분인) 곳이 많은 요즈음,
안주 없이도 영화보면서 꿀꺽꿀꺽 마시기에 좋은 맥주이다.
참고로
저 뒤의 큐알코드를 찍어보면 워크맨 유튜브 영상으로 이어지더라. 워크맨이면... 그 장성규 나오는 거 맞나. 난 유튜브에서는 노래만 듣는 편이고.. 유머 채널들은 봐도 딱히 내 취향이 아니라 그냥 바로 껐다. 그래도 되게 좋은 마케팅 기법이라고 생각한다. QR코드가 있으면 한 번 찍어보고 싶어지기 마련이니.. 평소에 유튜브 자주 보는 사람이라면 채널 구독으로도 이어질 수도?
-구매 이유 : 동기가 참치와 사케를 사준대서.... ㅎㅎ 너무 비싼 걸 시키기는 양심없으므로 평이한 가격대의 팩사케를 골랐다. 사케는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나지만 간바레오또상과 마루는 어디선가 자주 본 느낌이라 익숙하기도 했다.
전에 전통주인 한산소곡주를 먹어봤을 때는 굉장히 맛있게 잘 먹었던 기억이 있는데 사케도 비슷한 맛일거라 기대하며 시켰다.
-구매 후기 : 맛있었다! 전통주를 처음 먹었을 때와 비슷한 감동이었다,, 분명 소주와 비슷한 도수인데 소주의 그 공업용 알코올맛은 전혀 느껴지지 않고, 적당히 달달하다. 장난스러운 솜사탕 같은 단맛이 아니라 곡식에서 나오는 단맛 같은 맛.... 이것도 뭔가 감미료...로 만든 단맛이겠지?
근데 동기 하나는 너무 술맛이 안나고 달기만 해서 별로라는 말도 하더라.
전통주를 마셨을 때는 농도가 굉장히 짙고..뭔가 끈적거린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밀도가 높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 술은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 그냥 일반적인 술 정도의 질감? 얼음으로 차갑게 해서 먹으니 시원하게 꿀떡꿀떡 넘기기에 좋은 식감이었다.
약 5km를 넘게 걸은 뒤 '더워!'를 외치다가 들어간 이자카야라서 무조건 시원하게 달라고 해서 먹었는데, 뎁혀서 먹으면 어떨지 궁금하다. 그래도 난.. 커피도 차도 다 따끈하게 먹으면 향이 더 깊어진다고는 느끼지만 그럼에도 시원한 음료를 선호하는 편이기에, 술 또한 시원하게 먹는 게 더 취향일 것 같긴 하다. 그래도 잔술로 한 잔 쯤은 따뜻하게도 먹어보고 싶달까.
팩에 들어있는 입문용 사케인데도 맛있으니.. 한 병에 10만원이 넘는 고오급 사케들은 어떤 맛일지... 사케는 와인과 비슷한 이유로 (즉 비싸서) 30대의 내가 마셔주겠지~하고 미뤄놓고 있었는데, 약간 그 결심이 흔들리는 맛이다. 내 통장.. 지켜낼 수 있을까..
-구매 이유 : 드래프트 맥주를 캔으로 사마셔본 적은 기네스 외에는 없는 것 같아서,, 시도해보고 싶었다. 평소에 자주 보던 맥주인데 여태껏 한 번도 사보지 않아서 궁금하기도 했다. 또 사진에는 이미 뜯고 없지만, 앞서 포스팅한 에페스 필스너와 동일하게 입구 부분이 포일로 막혀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위생적이야.. 하지만 입대고 마시기는 여전히 뭔가 찝찝해서 잔에 따라마셨다. 자고로 맥주는 잔에 따라서 색도 구경하면서 마셔야 제맛!
-구매 후기 :
약간 비릿한 쇠냄새가 좀 났다. 캔입한지 오래된 맥주라서 알류미늄캔 냄새가 배어든 것이기라도 한 걸까.(?)
카스 생맥주를 술집에서 주문해 마실 때도 느껴지던,, 그런 냄새... 그냥 드래프트 맥주 특유의 냄새가 이런 걸까
-구매 이유 : 우선 요즘 너무 IPA나 페일라거 위주로만 마신 거 같아서, 오랜만에 필스너를 마시고 싶었다. 그리고 위의 호일 실링이 마음에 들었다.. 이상한 결벽증 같은 게 있어서,, 캔맥주를 마실 때 항상 휴지로 입구 부분을 깨끗이 닦고 나서 마시는데,, 이건 한꺼풀 덮여 있으니 위생적으로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사실 쨍한 파란색 패키지가 이뻐서 산 것도 좀 있고,,, ㅋㅋㅋ 뭔가 지금까지 먹었던 맥주들 중 뭔가 촌스럽고 난잡한 디자인이면 맛도 애매-한 경우가 많았기에 그런 디자인은 좀 꺼리게 되는데, 이건 나름 깔끔해서 거리낌 없이 고를 수 있었다. (물론 맥주 캔의 디자인이 힙하다고 맛이 보장되는 건 아니었다.. 약간 디자인은 그저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안 되는 상관관계랄까)
-구매 후기 :
사실 큰 기대를 안 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엔간했다!
근데 편의점 캔맥 필스너 중에 제일 내 입맛에 맞는 건 아직까진 필스너우르겔같고..
이건 '필스너로서' 맛있다기보단 그냥 '맥주로서' 맛있었다.
뒷맛도 깔끔하고, 인위적인 향도 느껴지지 않아서 좋았다.
예전에 포스팅했던 스팀브루 임페리얼 ipa를 한 캔 마시고서 마셔서인지 향과 맛의 풍부성은 훨씬 부족하다고 느껴지긴 했지만, 두 캔 다 가득찬 풍미의 맥주를 마시기보다는 두번째 캔은 살짝 가볍게 마셔주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매 이유 : 와인앤모어에서 새롭게 마셔볼 맥주를 탐색하던 중, 2500원이라는 혜자로운 가격 + 샛노란 종이 라벨을 두른 패키지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물론 용량이 440ml로 일반 맥주보다 약간 적어서 2500원이 아주 싼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만원이 넘는 맥주가 즐비한 와앤모의 진열대에서 ... 새로운 맥주를 싸게 습득할 기회를 놓칠 수 없지,,,
뭔가 나는 술 구매 시에 패키지를 많이 보는 것 같다. 와앤모에서 물론 맛 설명도 써두지만 설명만 보면 무슨 전부 천국의 맛일 것처럼 써놓아서.. 신뢰가 잘 안간다^^ 그래서 오히려 맛은 랜덤 가챠하는 느낌으로 사고 이쁜 캔을 탐하게 되는 효과가 발생해버린다-
-구매 후기 :
뭔가.. 꿀 맛이 났다. 그 허니허니한 맛을 맛보고서야 기억이 되살아났다. '아, 이거 진열대 설명에 꿀 어쩌구 써져있던듯'
그걸 제외하고는 무난하게 괜찮은 라거였다.
너무 쌉싸름하지도 않고 이상한 향이 추가되지도 않은, 깔끔한 라거.
다만 꿀 맛이 나는 만큼 뒷맛이 달다. 마시고 나서 입에 단 기운이 남아있는.. 그런 느낌.
참고로 이름을 코볼드라고 읽는 게 맞는지.. 제조사는 애드남스라고 읽는게 맞는지.. 모르겠어서.. 영어도 일단 병기했다
본 글에서는 농사개량의 추진 주체와 추진 대상의 비동일성, 소위 ‘식민성’이 어떤 영향을 가져왔는지를, 권업모범장의 성격과 이후 전개된 수도우량품종 도입을 통해 살펴보았다.
우선 권업모범장의 설립과 그 활동에서의 일본 중심적인 특성을 알 수 있었다. 권업모범장은 한말에 한국 정부의 농사시험장 설립을 통한 농업지배를 막으면서 설립되었 고, 이후 식민지기에 조선 총독부 산하로 편입되어 일본 농업 기술을 한국에 강제적 으로 도입하는 방식의 농사개량을 진행하였다. 권업모범장에서의 연구는 조선 전통 농업 기술과 재래품종을 기반으로 한 것이 아닌, 일본의 것을 가져와 그 중 적합한 것을 그대로 이식하는 방식이었다고 평가받는다. 이러한 권업모범장에게 가장 중요한 목적은 식민지 본국의 필요 충족이었다. 이어서 구체적인 사업으로서 우량품종 도입에 대해 살펴보았다. 대체로 우량품종도 입은 생산성 증대를 가져왔지만, 그럼에도 재래품종은 驅逐되고 소수의 우량품종으로 통일되는 등, 전반적인 농사개량 사업의 식민지적인 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또한, 일본의 기술을 그대로 이식해 오는 과정에서 조선의 농업 상황에 적합하지 않은 품종이 장려되어 생산성이 정체되거나, 일본 기술자들의 기술 부진으로 미단작화 등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 역시 우량품종 도입에 있어서 그 ‘추진 주체’와 ‘추진 대상’ 이 ‘일본’과 ‘조선’으로 달랐기 때문에, 농업기술 이식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파 악할 수 있다.
또, 우량품종의 도입 역시 농사개량 사업의 일부였기에, 전반적인 농사개량이 이러한 ‘식민성’의 영향을 받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농사개량 사업은 우선 그 목표 측면에서도 식민지 본국의 사회적 요구가 짙게 반영되었다. 또, 조선의 재래 농업을 경시하며 일본의 기존 연구의 방향성과 기술이 도입되었다. 조선의 미단작화가 그러한 두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본 글은 일제 식민 지배가 조선의 농업 상황에 끼친 영향을 다루되, ‘식민지 억압’의 차원보다는 식민 지배가 가져온 사업 주체-대상 간 비동일성이라는 특수한 상황의 측면에서 파악하고자 했다. 그러한 비동일성이 사업 과정에 깊이 반영된 양상을 확인할 수 있었고, 추진 주체의 의도를 추진 대상에 적용하려 하며 여러 부정적 영향이 야기되기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써보았던 과제글 중 가장 재미있게 쓴 글이자 교수님께 '주제의식이 뚜렷하다'라는 칭찬을 거의 처음으로 들은 글. 하지만 동시에,, 나만의 생각과 해석은 없고 이미 진행된 연구의 짜집기에 불과해서 현타도 왔던 글. 학부생 수준에선 어쩔 수 없...다고 위안하려 해도 주변 사람들은 나름 본인만의 문제의식과 참신한 생각을 가지고 글을 쓰는 것 같아서 우울했었던 기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