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대여소의 복식과 실제 개화기 복식 비교
1) 옷 길이의 차이
실제 1900년대와 그 이전의 치마 길이는 바닥에 끌리는 정도였으며, 1918년 이후 정도에야 치마 길이가 짧아져 발등 정도에 이르렀다.*4) 그때에 이르러서도 발목이 보이는 길이는 아니었으며, 이후 더 치마가 짧아지기 시작하여 1928년에는 무릎까지로 짧아졌다.*5)
이와 비교해서, 롯데월드 대여소의 치마 길이는 발목이 드러나는 정도가 대부분이며 익선동 대여소도 치마 길이는 발목을 겨우 덮거나 발목이 드러나는 정도이다. 이러한 치마 길이는 개화기 이후에 나타난 형태이므로 적합하지 않다. 발목이 드러나는 것은 일제강점기 중반 이후부터의 치마의 모습이다. 또한, 각 대여소에서 몇몇 치마는 무릎 정도의 길이에 오는 것도 있는데, 이는 1920년대 후반에서야 나타난 길이므로 개화기 의복이라 말하기 어렵다.
2) 전반적인 유행 스타일의 차이
1900년대 이전의 의복은 양장이 아직 본격적으로 한국에 들어오기 전이었다. 처음으로 양장을 하였던 윤고려, 엄비, 박에스더 등의 여성 양장의 특징은 s자 실루엣이 주를 이루고*6), 깁슨걸 스타일, 지고 드레스, 버슬스타일, 도렌 드레스 등의 롱플레어 스커트가 많다. 레이스 장식의 하이 네크라인과 함께 가슴은 레이스로 장식하고, 머리에는 레이스로 화려하게 장식한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있다. 양장이 아직 상류층 중심으로 퍼진 시대였으므로, 단정하고 평범한 종류보다는 화려함을 부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1890년대 양장의 형태는 위에서 설명한 초기 양장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애초에 양장을 한 이들이 별로 없었기에, 양장을 들여온 여성들의 스타일이 당대의 스타일로 정착된 셈이다. 우선 대표적인 형태로는 깁슨걸 스타일이 있는데, 어깨를 강조한 큰 소매에 스커트는 길이가 길고 폭이 넓게 퍼져 있었으며 목에는 리본을 맸다. 이후 몸의 전체적인 곡선을 모래시계와 유사하게 보이게 하는 아워글래스 실루엣 드레스, 지고 슬리브라는 소매가 특징인 지고 드레스, 보충재를 옷에 넣어 골반 등의 신체 일부를 강조하여 드러내는 버슬 스타일, 긴 주름치마가 나타나는 롱플레어 스타일 등이 나타난다. *7)
이후 신여성이 입은 양장은, 1900~1945년 미국에서 유행한 스타일과 비슷하게 유행하였다. 1900년대의 의복은 미국의 아르누보 스타일에서 영향을 받은 s자 실루엣이었다. 아르누보 스타일이란 그전까지 옷을 과장되게 부풀게 하여 신체를 강조했던 버슬 스타일과 달리, 몸의 곡선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형태이다.*8)
<그림 1>의 왼쪽은 s자 실루엣 원피스를, 오른쪽은 버슬 스타일 원피스를 나타낸다. s자 실루엣은 코르셋으로 허리를 조이고 가슴과 골반을 강조하며, 몸의 곡선을 드러내며 옆에서 보았을 때 s자를 이루도록 하는 형태이다. 소매는 주름 잡힌 퍼프 소매 형태로 어깨를 조금 강조하는 형태가 많았으며 외투는 테일러드 재킷 형태였다. 테일러드 재킷이란 남성의 정장과 유사한 형태로 제작된 재킷을 뜻한다. 박에스더도 블라우스를 입고 그 위에 재킷을 입었으며, 재킷은 퍼프 소매 형식이었다. <그림 2>는 퍼프 소매 원피스의 예시이다.
개화기 이후인 1910년대의 의복도 비교를 위해 살펴보자면, s자 실루엣의 변형으로, 허리선이 조금 올라간 자연스러운 형태였다. 스커트와 원피스는 A라인을 이루었다.*9) 지고 슬리브 드레스라는, 퍼프 소매에서 주름잡는 방식이 조금 달라진 소매를 갖춘 드레스를 입기도 했다. 이는 보다 과장되지 않은 어깨선을 드러내었다. 또한, 깁슨걸 스타일의 드레스도 다시금 유행하였다.
익선동 대여소에 배치된 의복의 경우 1910년대에 주로 유행한 양식이다. 의복의 목선은 U자 네크라인이기도 하고, 깃이 있거나, 목을 덮는 형태의 하이 네크라인 블라우스이다. 한국에서 깃이 있는 목선은 양장 도입 초기에, 하이 네크라인은 1910년대에, 라운드 네크라인은 1920년대에 유행한 것이다. 1909년의 사진을 보면 하이 네크라인의 원피스에 모자를 쓰기도 했지만, 이는 당시 유행을 앞서나가는 스타일로 묘사된다.*10)
따라서 개화기에서 일제강점기로 넘어가기 직전이라면 하이 네크라인이 존재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형식이 주가 되지는 않았기에 대여소의 의복 목선 대부분이 하이 네크라인의 형태인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롯데월드 대여소의 의복은 목선은 깃이 있거나 하이 네크라인 형태이다. 깃이 있는 형태의 블라우스 혹은 원피스는 양장 도입 초기에 유행했기에 적정하지만, 하이 네크라인의 경우 익선동 대여소와 마찬가지의 이유로 개화기 때의 의복 모양으로는 적절하지 않다. <그림 3>은 왼쪽부터 하이네크라인, 라운드 네크라인, 깃이 있는 네크라인을 보여준다.
또한, 두 대여소 모두 소매의 형태가 퍼프 소매가 아닌 일반적인, 팔에 밀착되는 형태의 의복이 많았다. 개화기 당시에는 퍼프 소매가 유행했기에 이는 적합하지 않다. 과장되지 않은 소매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은 1910년대 이후이다. 개화기에 여성 양장 외투로 많이 착용하였던 테일러드 재킷도 대여소에 준비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남성 정장의 일부로서 갖추고 있을 뿐, 개화기 여성 의복으로서 대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전체적인 옷의 라인은, 버슬 스타일처럼 옷을 일부러 부풀리는 형태가 아닌 자연스러운 몸의 곡선을 드러내는 원피스나 스커트가 많았기에 고증에 맞았다.
두 대여소 모두 스커트와 블라우스의 분리된 의복 형태보다는 원피스를 대여해주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은 양장 도입 초기에는 원피스 드레스 형태를 입다가 이후 블라우스와 스커트로 따로 구성된 형식이 많아졌다. 이는 저고리와 치마의 한복 형태가 반영된 것이다. 반면 일본은 전통 복식인 기모노가 원피스 형태이기에, 양장도 원피스 스타일이 많았다. 개화기는 양장 도입 첫 10년 정도이므로 초기에 원피스 드레스가 만연하던 시기에 속한다. 다만 이러한 구분은 명확한 것은 아니며 원피스와 블라우스‧스커트 형식은 함께 나타났다. 따라서 대여소의 의복이 원피스 형식인지 아닌지의 여부만으로 1900년대 당시 한국에서 유행하던 양식인지 일본에서 유행하던 양식인지 구분하여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3) 장식의 차이
장식은 모자, 양산/우산, 장갑, 그리고 신발과 머리 모양을 살펴볼 것이다.
양장을 한 여성은 모자를 착용한 경우가 많았다. 1890년대 후반에서 1900년대 초반, 가장 초기의 양장 여성들의 경우 박에스더는 챙이 좁은 모자를 썼고 윤고려나 엄비는 챙이 넒은 모자인 ‘카풀린’을 썼다. 가장 먼저 양장 교복을 도입한 숙명여고는 챙이 없는 ‘보닛 모자’를 썼다. 그 시기부터 1910년 이전에는 챙이 넓은 모자를 착용하거나, 모자의 높이가 낮고 챙이 넓은 모자에 리본이나 깃털 등을 장식된 모자를 착용했다. 챙이 좁고 아래로 향한 형태의 ‘클로쉐’가 챙이 넓은 카풀린보다 유행하게 된 것은 1930년대에 이르러서였다.*11) <그림3>은 1900년대 한국 여성 모자의 대표적 형태로, 넓은 챙을 확인할 수 있다.*12)
익선동 대여소는 작고 둥글며 망사 형태의 베일이 얼굴을 일부 덮는 형태인, 머리에 고정시키는 방식으로 착용하는 모자를 주로 배치해두었다. 이는 사람들이 흔히 ‘개화기 모자’라고 말할 때 떠올리는 형태이며, 실제로 인터넷 검색 플랫폼에 ‘개화기 모자’라고 검색할 경우 이러한 형태의 모자 이미지가 대다수이다. 그러나 작은 망사가 드리워진 둥근 모자가 개화기에 한국에서 유행했다는 자료는 특별히 찾아보기 어렵다.
롯데월드 대여소는 익선동 대여소보다 다양한 형태의 모자를 배치해두었다. 우선 챙이 넓은 형태의 모자가 많았으며, 클로쉐, 그리고 익선동 대여소와 마찬가지로 베일이 달린 모자 등이 준비되어 있다. 챙이 넓은 모자는 개화기에 실제로 많이 착용된 모자 형태라고 할 수 있겠으나, 클로쉐의 경우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유행한 것이기에 적합하지 않다. <그림 4>의 왼쪽은 클로쉐, 오른쪽은 카풀린의 예시이다.
양산과 우산은 쓰개치마를 쓰지 않게 되며 내외를 위한 목적으로 한복 착용자들 사이에서 유행했다. 쓰개치마가 짧아졌다는 기록은 1897년에 나타나며 1900년대부터 처음 벗기 시작하지만 본격적으로 사라진 것은 개화기 이후 일제강점기에 본격화된 현상이다.*13)
더하여, 여학생들이 쓰개치마를 쓰지 못하게 한 시기는 각 학교마다 달라서, 이화학당의 경우 1910년경에도 착용했다. 따라서 양산의 사용을 1900년대의 개화기 의상이라고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으며, 초기에는 한복 착용자들이 주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더욱 개화기 양장 대여소와 맞지 않다.
실크와 면으로 된 서양식 장갑이 유행한 것은 1920년대부터인데*14), 익선동과 롯데월드 대여소 모두 실크 혹은 레이스 재질의 장갑을 대여해주고 있다.
신발이나 머리 모양의 경우 대여소에서 준비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대여 서비스를 이용하는 개인이 가져오는 것이므로, 고증의 정확도 여부를 따지기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고증에 어긋난다고 해도, 이는 대여소 측의 실책이라기보다는 의복 대여 서비스의 현실적인 한계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다만, 한복 대여점의 경우 댕기를 대여해주는 등 머리 모양도 의복에 맞출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개화기 의복 대여소에서 그런 준비를 갖추지 못했다는 점은 아쉬운 면이 있다. 또한 한복의 치마 길이는 바닥에 끌리는 경우가 많아 신발이 대부분 보이지 않는 반면 개화기 의복 대여소에서는 발목이 드러나는 길이의 치마를 대여해주므로 신발이 선명하게 보인다. 따라서 개화기 의복 대여소에서 신발만큼은 구비하고 있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개화기 의복에 적합했을 신발과 머리 모양은 다음과 같다.
1910년대 이전 신발은 굽이 낮은 이브닝 슈즈, 오페라 펌프스, 후디드힐, 스태크 힐 등이었는데 이들의 특징은 굽의 높이가 낮았으며 문양이나 장식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양말과 더 다양한 종류의 구두가 들어온 것은 양장의 길이가 짧아진 1910년대에 이르러서였다.*15)
따라서 대여소에서 구비하면 좋을 신발은 단정한 형태의 굽이 낮은 구두일 것이다. 1900년대 머리 모양의 경우 기존의 쪽진머리 양식, 즉 머리 중앙의 가르마를 중심으로 잔머리 없이 빗었던 것에서 발전하여 가르마의 위치를 좌우로 이동하고 부피감을 주어 묶었다. 또한 이화학당 학생 사이에 잠시 유행한 ‘팜프도어’, 혹은 ‘히사시가미’라고도 부르는 스타일도 있었는데, 이는 머리를 치켜 올려 빗어 리본을 매거나, 이마 위에 모자의 챙 같이 빗어 올린 머리 형태를 의미한다.*16) 대여소를 이용하는 여성들은 긴 머리를 푼 채로 모자를 쓰는 경우가 많은데, 머리를 틀어올리는 것이 더 개화기에 적합한 머리 형태일 것이다.
(다음 글에 이어서)
주)
4)유수경, op. cit., p.147.
5)유수경, 韓國女性洋裝變遷史, 일지사, 1991, p.176.
6)유수경, 「韓國 女性洋裝의 變遷에 관한 硏究」, 이화여자대학교 대학 박사학위 논문, 1989, p.129.
7)김영희, op. cit., p.90.
8)이정원, 「아르누보 이미지의 드레스 디자인 연구 : 장식 디테일 사례를 중심으로」,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08, p.31.
9)유정이, 「한국과 일본의 신여성복식 비교 연구 : 20세기 전반부를 중심으로」, 홍익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07, pp.30-31.
10)유수경, 「韓國 女性洋裝의 變遷에 관한 硏究」,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1989, p.134.
11)유정이, op.cit., p.97.
12)유정이, op.cit., p.100.
13)김영희, op.cit., p.94.
14)유정이, op.cit., p.99.
15)유수경, 韓國女性洋裝變遷史, 일지사, 1991, p.146.
16)나윤영, 「한국 여성의 헤어스타일 변천에 관한 연구 : 1900년대부터 1990년대를 중심으로」, 호남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1,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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