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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는 주석 표시이므로 글 하단을 참조하기를 바람.

 

-오징어라는 단어에 한정성을 부여하다

 

누군가 '오징어회는 회가 아니라 그냥 오징어다'라고 말을 한다면

그에 대한 답변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을 테다. 

 

"오징어회가 회가 아니라 그냥 오징어라면, 삶은 오징어는 오징어가 아니다"

(이 답변은 반박의 의미를 내재한다기보다는 순수하게 담화의 건네받기라고 봐야 한다.)

 

삶은 오징어는 오징어에 첨가된 의미의 부스러기를 지닌, 살풋 하위(어쩌면 상위)의 존재이거나 혹은 오징어와는 첨예하게 다른, 별개의 존재여야 한다.

오징어회가 그냥 오징어라고 말한 그 순간부터 오징어라는 단어에는 포괄적인 범용성이 사라지고 '그냥'이라는 부사어의 구어체적 함의에 종속된 한정적인 의미만이 남을 뿐이므로, 오징어회라는 의미가 오징어라는 단어를 선점한 이상; 혹은 오징어라는 단어가 오징어회라는 의미를 선점한 이상, 삶은 오징어는 더이상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오징어'가 아니게 된다.

 

어쩌면 오징어회와 삶은 오징어가 '모두' 오징어일 뿐이라는 의견을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이 문장이 성립하려면 오징어회와 삶은 오징어가 완전하게 동일한 개념이거나, 오징어가 오징어회와 삶은 오징어 모두의 상의어여야 한다는 점을 바탕으로 그 타당성을 판단해보자.

먼저 전자의 경우, 둘은 완전하게 동일한 개념이 될 수 없다. 전자는 '삶은 오징어는 삶은 게 아니라 그냥 오징어다'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는데 이는 삶았다는 표현에 대한 부인이다. 그러나 '회'는 그 자체로 특정 상태를 표출하는 단어인 반면 '삶은'은 삶는다는 행위를 통해서야 비로소 상태에 이른다는 차이가 있다. 따라서 삶았다는 표현을 부인하는 것은 삶는다는 행위를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행위와 동일시하는 태도, 즉 有와 無가 같다는 태도이기에 옳지 못하다.

후자의 경우, 오징어는 오징어회의 상의어가 될 수 없다. 그저 "오징어회는 오징어다"라고만 단언하는 것을 넘어 "회가 아니라 그냥 오징어다"라고 말함으로써 '회'의 속성은 부인되고 '오징어'라는 속성만이 오징어회의 존재를 설명하는 전부가 되었다. 원래는 상하의어 개념으로 통용되는 관계였을지언정 상하를 구분짓는 구체성의 부여 도구가 그 의미를 잃는다면, (구)상의어는 (구)하의어와 동치로 변환되고 만다. 

 

결국 삶은 오징어는 더 이상 포괄적인 의미의 오징어가 아니라는, 앞에서의 결론으로 되돌아온다.

 

 

-삶은 오징어와 포괄적 오징어의 의미상 상관관계 : 차별적인 부분

 

그렇다면 '삶은 오징어'라는 단어 속 '오징어'와 '더 이상 오징어가 아니게 된다' 라는 문장 속 '오징어'의 의미 역시 달라진다. 둘은 같은 거죽을 공유할 뿐인 상이한 존재이다. 이때 그 거죽은 적어도 오징어향은 날까? 다시 말해 관념적으로 통용되는 오징어라는 의미의 잔재가 남아있기는 할까? 하지만 일단 잔존하는 것보다는 변모한 요소에 초점을 두고자 - 이 점은 잠시 넘어가보기로 한다.

 

같은 형상을 띤 존재의 동일시되지 않는 면을 찾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음에도, 논의의 편의라는 얄팍한 목적을 위하여 전자를 오징어 , 후자를 오징어 숙*이라고 일시적으로 환가한다면

잠시 언급하고 지나갔었듯이 은 과 상하의어 관계일지 혹은 아예 단절된 성상을 보일지도 중요하다. 둘의 관계성으 파악하는 것은, 오징어라는 단어에 의미를 불어넣음으로써 근원적으로는 하나였던 단어가 어디까지 세분화되어 존재하게 되는지를 추적하는 과정으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앞의 '삶은'의 기능을 탐구해야 한다. 삶는다는 행위는 그 존재의 기반에 어느 정도의 변화를 가져오는가? 내재된 본질을 저해하는 행위인가, 혹은 속성을 덧칠하는 것에 불과한가? 어쩌면 '삶다'를 행위가 아닌, 2차원의 텍스트가 오징어라는 단어의 전면부에 부가된 것으로서만 수용해야 하나?

 

첫째로, 만약 삶다라는 단어가 오징어의 존재에 근원적인 진동을 가져온다면 은 단절되어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행위를 통해 근원에 닿아 그 연결성이 끊어지는 것은 의외로 쉽기 때문이다.

 

둘째로, 만약 삶다라는 단어가 속성의 덧칠에 불과하다면 의 하의어이다. 하의어는 그 의미적 구체성의 차원에서 상의어를 뛰어넘는다는, 얼핏 보면 모순적인 속성을 지닌다는 사실에서 도출된 결론이다. 문제는 애초에 의 하의어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글 첫머리에서 오징어회가 오징어라는 단어의 의미를 선점함으로써, 삶은 오징어는 오징어로서 존재할 기회를 빼앗겼다. 따라서 오징어()는 삶은 오징어()의 상의어가 될 수 없다. 그것이 본 글의 가정의 시작점이었으므로. 

반면에 이 의 상의어가 될 수는 있다. 얼핏 불가능해보이지만, 에는 변화가 부재한다고 단정할 수 없기에 가능하다. 단어의 의미가 비틀어지고 변동하는 것은 오롯이 상대성에 기반을 둔다. 겉보기에 이 그대로더라도 이 변화했다는 바로 그 상대적인 상황이 에 변화를 가져왔을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 더욱이 이 경우는 글 첫머리의 가정과 대립되는 지점도 없어서 오히려 더 합리적이다.**

 

셋째로, 만약 삶다라는 단어가 오징어라는 단어의 앞에 붙여진 수식언일 뿐이라면 은 별개라고 착각되었을 뿐인 동의어이다.***그러나 우리는 앞서 오징어회는 오징어라는 사실을 가정했고, 오징어회는 삶은 오징어와 동일하지 않음을 확인했다. 이를 엮으면 오징어는 삶은 오징어와 동일하지 않게 된다. 즉 과 동의어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의 관계는 단절되어 있거나, 이 불확정적으로 의 상의어라는 결론이 나온다.

 

 

-삶은 오징어와 포괄적 오징어의 의미상 상관관계 : 공통적인 부분

 

서 넘어갔던 논점, 바로 이라는 거죽에 공통되는 오징어향의 잔재가 남아있을지에 대해서도 생각을 기울여보자. 다시 한 번 상기하자면, 은 '삶은 오징어'라는 단어 속 '오징어'였으며 은 '더 이상 오징어가 아니게 된다' 라는 문장 속 '오징어'였다.

 

이는 '공통되는 오징어향'이라는 표현 속 오징어를 '공통성'으로만 그 의미를 한정지은 제3의 단어로 봐야 할지, 혹은 모든 오징어를 포괄하는 단어라서 공통성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고 봐야 할지에 따라 달라진다. 앞의 경우는 이라고 부르겠다.* 그리고 뒤의 경우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생각하는 '오징어'일 것이므로 오징어α(오징어 알파)라고 칭하겠다. 각 경우에 , 또는 오징어α,과 병존 가능하다면에는 공통되는 부분이 존재하겠고, 병존이 불가하다면 오직 차별성만이 있겠다.

 

우선 명이 정, 숙과는 별개의 의미를 지닌 '공통성'이라는 특이 요소라고 가정해보자. 잠시 여기서, '공통성'인 을 추출해냈는데 어째서 '특이하다'라는 표현이 쓰였는지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청포도사탕 속 초록색과 무지개의 초록색은 공통적으로 '초록색'이지만 청포도 사탕이나 무지개 그 자체와는 별개임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이 경우에는 과 단절되어있든, 상하 관계이든, 동의어이든 상관없이 은 존재한다. 의 의미 자체가 '추출된 공통성'이므로 강제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립한다는 사실이 결과론적인 이유이고, 단절 또는 상하 관계가 '모든 차원에서의' 단절 또는 상하 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이 원인론적인 이유이다. 예컨대 오렌지와 필통은 의미적으로 단절되어있다. 그럼에도 오렌지와 필통에는 공통점이 존재할 수 있다. 도 마찬가지이다.

 

이번에는 오징어α, 즉 확실한 포괄성을 품었다고 가정해보자. '공통되는 오징어향이 있는가'라는 질문은 '상위의 단어가 하위의 단어에 여전히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이 된다. 이 의 상의어라면 과 오징어α는 동의어가 되고, 이 경우 오징어α의 존재 조건인 '확실한 포괄성을 가진다', 즉 '상의어이다'와 오징어α의 성질 가정인 '과 동일하게 상의어이다'가 동일하므로 오징어α는 존재할 수 있었을 테다. 그러나 앞에서 논의한 바 있듯이, 의 상의어가 될 수 없으므로 해당 가정은 기각되고, 오징어α는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이 단절되어있다면 오징어α만이 상의어이며 은 그에 종속성을 띨 테다. 이 경우 오징어α는 정과 숙의 관계와 동일해지므로, 단절되어있다. 이는 바로 앞문장의 '오징어α만이 상의어이다'라는 가정과 전면적으로 모순이 되어 오징어α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이에 공통점이 존재함이 확실한 것은  '공통되는 오징어향'의 오징어가 일 때에만 가능하다.

 

 

 

-다시, 오징어회로

 

처음에 우리는 '오징어회는 회가 아니라 그냥 오징어일 뿐이다'라는 표현에 대한 대응으로서 삶은 오징어를 가져왔었다.지금까지 나온 결론을 정리하고, 등으로 일시적인 환가가 이루어졌던 표현을 원래대로 복귀시키면 다음과 같다.

 

- 삶은 오징어는 포괄적 의미의 오징어가 아니다.

- 삶은 오징어과 포괄적 의미의 오징어의 관계는 단절되어 있거나, 삶은 오징어가 불확정적으로 포괄적 의미의 오징어의 상의어이다.

- 삶은 오징어와 포괄적 의미의 오징어 사이에 공통점이 존재하려면 해당 '공통점'이 공통성으로서의 일부 특이 요소를 일컬어야 한다.

 

이 중 '오징어회는 그냥 오징어일 뿐'이라고 말하기 위한 필요조건은 첫번째, 두번째 문장의 동시 충족일테고, 충분조건은 세번째 문장이 될 테다. 즉 오징어회의 회과 오징어性에 대한 해당 표현은 조건부로만 성립함을 확인하며 글을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주) 

*이는  고교의 학급 분류법을 차용한 것이다.

**첫번째와 두번째 경우에는 '삶은오징어'로 붙여씀이 '삶은 오징어'라고 띄어쓰는 것보다 적절할지 모른다. 일반적인 관형어구로서의 의미는 와해되고 근본적인 존재에 개입하고 있다면 '수식언'이라는 틀로부터 아예 벗어난 것으로서, 그 사실이 외형적으로도 드러나야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이때 '동일한 단어'와 '동의어'는 구분하여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의미가 같고 외적인 형태소가 같지만 동일한 단어가 아닐 수 있다. 형태소가 똑같다는 관점 역시 우리의 인식에 의했을 뿐이며, 인식은 무엇보다도 주관적이어서 그러한 의미 부여는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물론 동일한 단어든 동의어든, 이어지는 모순 상황을 마주함은 마찬가지이다.


-소재 출처 : 2022.02.05, 동기들과의 카톡.

이때 '그럼 삶은 오징어는 오징어가 아닌가?'라고 카톡하고 싶은 것을 열심히 참았었다

 

 

놀랍게도 알코올은 단 한 방울도 마시지 않고 쓴 글... 취하지 않고서 취한 글을 쓰는 것, 무논리로서 논리를 설파하는 것이 본 게시판의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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